한국 경제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팀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 재무부가 그제 한국을 1년 만에 다시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대미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무역적자를 미 경제의 적으로 보는데 한국을 겨냥한 통상압박과 공세가 더욱 거세지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미 정부는 자국에서 제조한 전기차에 차량당 보조금 7500달러를 세액공제 형태로 지급한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3사는 이 약속을 믿고 미국에 공장을 지었는데 보조금을 없애겠다고 하니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보조금폐지를 반도체로 확대하고 10∼20%의 보편관세까지 물릴 경우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로서는 재앙이 될 것이다. 반도체와 자동차·배터리산업이 전체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16%에 달하기 때문이다.
환율관찰대상국 지정 파장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2016년 4월 이후 줄곧 대상국이었다가 지난해 11월과 올해 6월 대상국에서 빠졌는데 이번에 재차 포함된 것이다. 이 조치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의 환율과 경제정책을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한국의 대미무역흑자는 2022년 280억달러에서 지난해 444억달러로 늘었고 올해는 5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도 국내총생산(GDP)의 3.7%(6월말기준)에 달한다. 트럼프가 이 조치를 빌미삼아 한국을 미 보호무역주의의 희생양으로 삼지말란 법이 없다. 고환율도 걱정스럽다. 가뜩이나 원·달러환율이 달러당 1400원대로 치솟은 상황에서 정부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있다. 과도한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질 경우 외환 당국이 시장개입에 나서야 하는데 자칫 ‘환율 조작’으로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악재가 꼬리를 무는데 정부는 위기감을 찾기 어렵다. 기획재정부는 어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에서 물가 안정세가 확대되는 가운데 완만한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현실은 딴판이다. 내수침체는 악화일로다. 소매판매는 역대 최장인 10분기째 쪼그라들고 도소매 취업자도 지난달 3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수출에서는 증가세가 둔화하며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내년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제 민관정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우선 정부는 트럼프2기에 거세질 보호무역주의에 대비해 기업피해와 경제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보호무역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제품경쟁력을 키우고 수출품목과 지역도 다변화하는 게 필요하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확 풀고 연구개발(R&D)과 투자에 대한 금융·세제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재정과 통화 등 거시정책 기조는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 쪽으로 전환하고 주식과 외환 등 금융불안을 막을 수 있는 시나리오별 대응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야당도 국정에 딴죽만 걸지 말고 민생안정과 경제살리기에 힘을 보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