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되어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린 냉전은 전쟁에 가까운 긴장과 대립의 상태였지만, 역설적으로 미국과 소련 간 직접 충돌이 없었던 오랜 평화의 시기였다. 그러나 동아시아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랐다. 유럽에서는 미·소 간 힘의 균형이 평화를 유지했지만, 식민지 경험, 이념 대립, 민족주의가 얽힌 동아시아는 초강대국의 대리전 구도 속에서 복합적 성격의 전쟁이 잇따라 발발했다.
그 시작은 중국이었다. 냉전 초기, 미국의 대소 봉쇄 전략의 최전선에 있었던 중국 국민당은 공산당에 패배하며 대륙을 상실하고 타이완으로 퇴각했다. 중국 공산화는 소련 스탈린에게 팽창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는 북한 김일성의 남침 요청을 승인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다. 중국 공산화 저지 실패에 대한 책임론에 직면했던 미국은 북한의 남침에 신속히 개입했다. 참전과 함께 미국은 타이완 방어를 위해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파견했고, 전세를 뒤집은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자 중국은 이를 미국의 위협적 봉쇄 전략으로 간주하며 전쟁에 개입했다. 그러나 미·중은 군사적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전쟁은 휴전 회담과 함께 무승부를 목표로 하는 제한전 형태로 전환되며 결국 정전으로 종결되었다.
6·25전쟁은 냉전을 군사적 대립으로 바꾼 전환점이었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일본은 재무장을 시작했고, 유럽에서는 군비 증강이 이어지며 냉전 체제가 공고해졌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도 동아시아에서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고, 전쟁의 중심축은 인도차이나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