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2024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일 정상들과 연쇄 회담을 갖고, 러시아와도 소통 채널을 확보해 북·러 군사협력 저지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오전 페루 수도 리마의 중국 대표단 호텔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2년 만에 만나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하고 한·중 경제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특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분야 후속 협상 가속화에 합의했다. 중국이 최근 단기비자 면제 조치에 이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내년 한·중 FTA 발효 10주년을 맞아 FTA 서비스 투자 협상이라는 남겨진 과제를 함께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했다. 김 차장은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을 통해 양국 발전을 도모하자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오후에는 지난해 8월 미국 캠프데이비드 회동 이후 1년3개월 만에 한·미·일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숨가쁜 외교 일정을 이어갔다. 세 정상은 40여분간 진행된 회의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정례화를 위한 협력 사무국 설치에 합의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먼저 제안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영속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은 큰 성과”라고 평가했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도 “사무국 제도화를 통해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북한과 다른 여러 도전에 함께 대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3국 정상은 북한 인권 문제도 정면으로 거론했다. 이들은 “북한 내 인권 증진을 촉진하고 납북자, 억류자,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3자 회동 직후 윤 대통령은 내년 1월 퇴임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10분간의 별도 양자 회담을 가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현직으로는 윤 대통령과의 마지막 회담이었기 때문에 매우 애정 어린 마음으로 윤 대통령을 아끼고 믿고 의지하면서 함께 일해왔던 것을 회고한 대화”라고 했다. 이날 하루 동안 두 정상은 에이펙 세션 휴식 시간 환담까지 포함해 총 세 차례 만났다.
윤 대통령은 에이펙 폐막일인 16일, 이시바 총리와 두 번째 정상회담을 열어 북·러 군사협력을 규탄하고 양국 간 셔틀외교를 이어가기로 했다.
두 정상은 당초 예상보다 긴 약 50분간 회담을 진행했다. 이는 지난달 라오스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이후 한 달 만의 재회였다.
윤 대통령은 북·러 군사협력 당사자인 러시아와도 최근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윤 대통령은 에이펙 계기 외신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필요한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주변 4강 정상들과 모두 긴밀히 접촉하며 북한의 러시아 파병 위기 관리 총력전에 돌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