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B’ 짜고 트럼프 인맥 전면에… 무역전쟁 대비 나선 재계 [트럼프 2기 시대]

산업계, 트럼프시대 대응 분주

배터리업계, 보조금 축소 땐 날벼락
바이든 정부와 최종계약 논의 속도

현대차, 창사 이래 첫 외국인 CEO
그룹 싱크탱크 수장엔 성 김 내정
삼성전기, 멕시코 공장 건립 스톱

트럼프·공화 인맥 두터운 김승연
한화 방산 회장직 맡으며 지휘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우리 산업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정책 변화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별 전략을 고심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인맥’ 등 주요 인사도 주요 사업 전면에 나서고 있다.

머스크와 UFC 대회 찾은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오른쪽)가 16일(현지시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대회인 UFC309를 찾아 가수 키드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17일 재계에 따르면 당장 배터리업계는 트럼프 당선인 정권인수팀이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계획하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석유·가스회사 ‘콘티넨털 리소스즈’ 창립자인 해럴드 햄과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이끄는 에너지정책팀이 IRA 세액공제 폐지를 논의하고 있고, 일론 머스크가 최고경영자(CEO)인 미국 최대 전기차 판매업체 테슬라도 제도 폐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IRA는 △소비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투자 세액공제 △생산 세액공제 3가지가 있는데, 해당 보도에는 투자·생산 세액공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IRA 보조금 관련 폐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으나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트럼프 변수가 더해지면서 배터리업계는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해놓고 유연하게 대처할 방침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우주선용 배터리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유럽 시장 점유율 회복 등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세부 세항을 미 정부와 지속해서 논의 중이다. 앞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삼성전자에 64억달러(약 8조9000억원), SK하이닉스에 4억5000만달러 보조금 지급을 위한 예비거래각서를 체결했다. 보조금 지급을 위해서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본계약 최종 계약이 이뤄져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지원법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많이 했기에 집권 전 계약을 서둘러야 한다. 최근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가 미 정부와 미 반도체 공장에 대해 보조금 66억달러를 확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들은 투자 집행에도 한층 신중해졌다. 지난해 말 멕시코에 처음으로 전장용 카메라 모듈 생산공장을 짓기로 한 삼성전기는 현재 멕시코 생산법인은 설립했으나 건설을 위한 첫 삽은 뜨지 않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자동차 업계의 움직임, 관세 정책을 포함한 여러 영향을 고려해 접근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아도 미국 현지에서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9 생산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올해 IRA 보조금 요건이 엄격해지면서 혜택이 기대에 못 미치는 데다 트럼프 당선이라는 변수가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2기를 상대할 ‘진용’ 강화에 나선 기업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5일 대표이사·사장단 임원 인사를 예년보다 앞당겨 실시하면서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호세 무뇨스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을 임명했다. 현대차 CEO로 외국인이 선임된 것은 1967년 창사 이후 처음이다. 무뇨스 신임 대표는 2019년부터 현대차 북미 활동을 총괄하며 잇달아 북미지역 최대 실적을 냈다. 대외협력·국내외 정책 동향 분석, 홍보·PR 등을 총괄하는 그룹 싱크탱크 수장에는 전 주한미국대사 성 김 현대차 고문역을 내정했다. 그는 동아시아·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정통한 미국 외교 관료 출신 전문가로, 올해 1월부터 현대차 고문역으로 합류했다.

머스크와 UFC 대회 찾은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앞줄 왼쪽)이 17일(현지시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종합 격투기 대회 UFC 309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TKO 승리를 거둬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존 존스(오른쪽)에게 챔피언 벨트를 건네받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경기장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마이크 존슨 연방 하원의장, 장남 트럼프 주니어 등과 동행했다. 뉴욕=AP연합뉴스

김승연 한화 회장은 ㈜한화·한화솔루션·한화시스템·한화비전에 이어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에도 올랐다. 트럼프 집권 2기에서 국방 예산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그룹 내 방산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재계 대표적인 트럼프·공화당 인맥으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지난 14일 ㈜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보은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인공지능(AI) 및 무인화 기술이 핵심이 되는 미래 방위사업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미래 전장 환경에 맞춘 솔루션을 개발하고,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확보해나가자”고 강조했다.

 

메리 러블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위원은 15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아메리칸대학이 주최한 패널 대화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10∼20% 보편적 관세에 대해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지만, 관세에서 면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IRA에 따라 북미산 전기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 보조금을 지원하는 세액공제 제도를 폐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상공회의소의 아시아 담당 부회장 출신인 태미 오버비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선임고문도 트럼프 당선인이 IRA와 반도체법에 근거한 보조금을 회수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