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추락한 변호받을 권리

“제가 국선이라서요…”

 

올봄부터 가을까지 중증 정신질환자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을 취재하기 위해 전화통을 놓지 못했다. 어렵사리 닿은 연락 끝엔 ‘국선 변호인’이었다는 점을 밝히며 말끝을 흐리는 경우가 수차례 반복됐다. 처음엔 기자를 믿지 못해서라고 지레짐작했지만, 한 변호인이 털어놓은 사정을 듣고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김나현 정치부 기자

“국선이란 말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여력이 안 된단 거예요. 사건을 기억하기도 어렵단 뜻이죠.”

 

문제는 가족을 해친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망상·환청 등 증상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병세가 극단적으로 악화한 상태로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된다는 점이었다. 관련 재판을 진행 중인 다섯 가족을 만나선 피고인이 약물 처방을 받더라도, 구치소·교도소는 치료 의무가 없어 약 복용 등 관리가 전혀 안 된다는 현실도 알게 됐다.

 

중증 정신질환은 꾸준히 치료하면 증상을 관리할 수 있지만, 치료 없인 걷잡을 수 없이 병세가 악화됐다. 방치된 피고인들은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도 어려워했다. 수원고등법원에서 만난 한 변호인은 조현병이 악화해 어머니를 해한 30대 남성의 재판을 마친 후 “피고인과 대화가 어렵다”며 “양형조사관도 조사가 힘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미수 사건의 피고인 대다수는 국선 변호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관련 사건의 10년 치 판결문 분석 결과, 국·사선 여부가 확인된 384건 중 322건(84%)은 국선 사건이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부모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가해자인 자녀의 변호인을 선임해주기 어려운 구조라고 한다.

 

결국 국선이 그들에겐 ‘최후의 보루’인 셈이었지만, 변호인들은 국선이라는 사실을 송구스럽다는 듯 밝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로 사선의 경우 중증 정신질환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보이며 ‘심신상실’을 입증해 무죄를 받기도 했지만, 국선의 경우 피고인의 상태와 치료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모습도 보였다.

 

물론 국선의 게으름 탓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버거운 사건 수와 싸우고 있었다. 조현병이 악화해 어머니를 둔기로 내리친 20대의 변호를 맡은 대구의 한 국선 전담 변호인은 “매달 25건의 사건을 새로 배당받는데, 사건이 몇 달씩 진행돼 한 번에 40건을 병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서류 더미에 파묻힌 이 변호인은 퇴정하며 자신을 향해 꾸벅 인사하는 피고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다음 재판 기록을 바삐 뒤적였다.

 

국선 변호인이 사건 홍수에서 허우적거릴 동안 동분서주하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피해자인 가족이었다. 망상에 휩싸여 자신을 둔기로 내려친 아들을 위해 한 어머니는 검찰 측에 직접 편지를 보냈다.

 

“먹고살기에 급급해 자식의 곪아 터져버린 상처조차 어루만져 주지 못한 채 지켜만 보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치료감호를 잘 받아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국립법무병원에 수감돼 전문 치료를 받는 ‘치료감호’는 일차적으론 검찰이 청구해야 하나, 이들이 놓친 공백을 국가가 선임한 변호인도 채워주질 못했다. 또다시 가족 몫이었다. 사회적 무관심 속 치료 때를 놓친 중증 정신질환으로 뭇 가정이 풍비박산 날 동안 국가는 뒷짐 지고 체면치레만 한 것이 아닌가. 이 물음이 취재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