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칼럼] 유죄·비호감, 한국 정치 리더십의 추락

尹, 김영선 관련 통화 檢 조사 불가피
이준석 “포항시장 공천도 개입” 폭로
李, 선거법 위반 징역 1년 최대 위기
두 지도자 정치자질 부족 국민 실망

“정치인은 자신이 누릴 권력에 도취되기에 앞서 감당해야 할 권력을 책임 있게 수행해낼 자질과 역량을 갖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독일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1919)에서 정치인의 기본자세에 대해 이렇게 역설했다. 베버는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3대 자질을 제시했다. 대의에 헌신하려는 열정, 책임의식, 균형 감각이 그것이다. 정치인의 자질로 그가 꼽은 또 한 가지는 권력 의지다. 베버의 목록에는 없지만, 현대 정치에서 중요도가 배가된 정치인 자질도 있다. 민심을 읽고 교감하는 능력이다.

김환기 논설실장

국민 지지율 20%를 넘나들며 비호감 딱지가 붙은 윤석열 대통령에겐 이들 잣대를 들이대기도 민망할 지경이다. 공직선거법 사건 1심에서 국회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또 어떤가. 행정부와 의회 권력을 쥔 이들이 정치 타락을 주도하는 게 한국의 현주소다. 권력 의지만 강할 뿐 올바르게 행사하지 않은 결과다.



윤 대통령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명씨와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6월 경남 창원 의창 보궐선거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명씨에게 “김영선이를 좀 해 주라 했는데 당에서 말이 많네”라고 한 통화 녹음이 공개된 적이 있어 검찰의 윤 대통령 조사는 불가피하다.

여기에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까지 윤 대통령이 경북 포항시장과 서울 강서구청장에 특정인의 공천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공천관리위원회에 공천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대통령실의 과거 해명과 상충된다. 책임 회피 논란이 더 거세질 게 분명하다. 공천개입 의혹이 대의를 위한 행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냉철한 균형 감각을 겸비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실수가 아닌가.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도 윤 대통령을 옥죄는 현안이다. 수사 대상이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명태균 관련) 공천·선거 개입 의혹인 데다 찬성 여론이 60%를 넘는다.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하겠지만, 더 짙어질 민심 외면 이미지는 부담이 될 것이다.

이 대표는 더 험난한 가시밭길을 만났다. 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해 정치 생명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법원은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는 발언을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민주당을 대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의 볼모로 잡힌 거대 야당의 민낯이다.

재판부는 “허위사실이 공표되면 민의가 왜곡되고 대의민주주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어 죄책이 상당히 무겁다”고 밝혔다. 하나 이 대표는 “결국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라고 했다. 사필귀정의 판결이라는 다수 민심과 배치된다. 책임 윤리 부족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오는 25일 위증 교사 사건도 판결이 내려진다. 민주당은 그간 다수 의석을 앞세워 법원을 겁박하는 한편으로 예산을 246억원 늘려주는 당근을 제시했지만, 사법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법원은 앞으로도 오직 증거와 법리로만 판결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기 바란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이 자질 부족으로 국격을 실추시키고 국민에 실망감을 안기는 현실이 참담하다. 문제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난관 돌파 해법을 상대의 실패에서 찾으려는 데 있다. 이 대표는 정권 퇴진 운동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 유죄 선고로 특검 동력이 약화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이런다고 난관에서 벗어날 길이 열리겠는가.

국민이 놀랄 정도의 내각·대통령실 인적 쇄신과 김 여사 대외활동 전면 중단 등으로 지지율을 끌어 올리는 게 정도다. 윤 대통령의 고질병인 민심 난독과 공감능력 부족, 뒤늦은 반응을 안 고치면 답이 없다. 크게 안 변하면 윤 대통령의 정상적인 하산은 어렵다. 이 대표도 방탄에 공당을 이용하는 것을 접고 민생입법 처리에 매진해야 옳다. 유죄 선고 판사를 탄핵하거나 재판 지연에 올인하는 전략은 역효과를 낳을 자충수가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