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T의 우완 정통파 투수 박영현(21)은 수원 유신고 시절 시속 152km의 직구를 뿌리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고3이었던 2021년엔 고교야구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고교 최동원상’을 수상할 정도로 ‘될성 부른 떡잎’으로 주목받았다. 문동주(한화)와 더불어 고교 투수 최대어로 손꼽힌 박영현은 연고 구단인 KT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데뷔했다.
신인이었던 2022시즌엔 추격조 역할을 주로 맡으며 52경기 51.2이닝을 소화하며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3.66 탈삼진 55개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내보였다. 이닝당 탈삼진이 1개가 넘을 정도로 신인 때부터 직구 구위는 빼어났다.
2년차 시즌인 2023시즌, 박영현은 곧바로 정상급 불펜투수로 거듭났다. 시즌 전부터 이강철 감독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박영현은 마무리 김재윤 바로 앞에 등판하는 ‘프라이머리 셋업맨’ 역할을 맡았고, 7월까지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성적을 보였다. 한때 평균자책점이 3점대 중반으로 치솟기도 했지만, 막판에 다시 안정감을 찾았다. 시즌 성적은 68경기 75.1이닝 3승3패 4세이브 32홀드 평균자책점 2.75. 탈삼진은 이닝당 1개가 넘는 79개였다. 역대 최연소 30홀드를 비롯해 최연소 홀드왕에 오르는 등 고졸 2년차 투수의 역대급 시즌을 보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엔트리에도 포함돼 강력한 직구를 앞세워 금메달 획득에 일조하며 일찌감치 병역혜택도 받았다.
지난겨울 KT 마무리였던 김재윤이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마무리 자리는 자연스럽게 박영현에게 넘겨졌다. 시속 150km 상회하는 직구로 타자들을 찍어누르는 박영현은 마무리로는 제격인 투수였다.
8회와 9회는 중압감이 달랐을까. 풀타임 마무리 첫 시즌을 맞이한 박영현은 올 시즌 초반엔 흔들리는 모습이 잦았다. 3~4월엔 3세이브를 거두긴 했지만 평균자책점이 6.91에 달했고, 5월에 0.68로 안정감을 찾는 듯 했지만, 6월 들어 다시 8.71로 치솟는 등 전반기를 35경기 등판, 6승2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4.83으로 마쳤다. 피홈런이 무려 9개나 될 정도로 난타를 당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박영현은 제 모습을 되찾았다. 중요한 상황엔 멀티이닝도 마다하지 않는 등 불펜진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후반기 성적은 4승무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2.02. 피홈런도 3개로 눈에 띄게 줄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승2패 25세이브 평균자책점 3.52. 시즌 초반 워낙 난타를 당한 탓에 3점대 평균자책점이 흠이긴 했지만, 1이닝 이상 소화한 횟수가 무려 25회로 김상수(롯데)와 공동 1위였다. 동점 상황에 많이 나온 탓에 데뷔 첫 두 자릿수 승수도 거뒀다. 10승 이상에게 주어지는 승률왕 타이틀도 승률 0.833의 박영현에게 주어졌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와일드카드 결정전 2경기 1세이브 평균자책점 0, 준플레이오프 2경기 4.1이닝 1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특히, 1승2패로 탈락 위기에 몰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선 무려 3.1이닝 무실점 역투로 승부를 5차전까지 끌고가기도 했다.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박영현의 돌직구와 기세는 세계무대에서도 통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엔트리에 포함된 박영현은 투수진 중 가장 빛나는 투구를 선보였다.
이번 프리미어12 대표팀에는 KBO리그 5개팀의 마무리가 포함됐다. KIA의 정해영, LG의 유영찬, 두산의 김택연, SSG의 조병현, 그리고 박영현. 이 중에서도 마무리 역할을 박영현에게 주어졌다. 그만큼 류중일 감독과 최일언 투수코치의 박영현을 향한 신뢰는 두터웠다.
박영현은 코칭스태프의 신뢰에 100% 부응했다. 첫 등판이었던 쿠바전에서 8-4로 앞선 9회 등판해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낸 것을 시작으로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는 1.2이닝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박영현이 마운드에 있는 동안 한국이 4-6에서 9-6으로 경기를 뒤집으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이미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던 마지막 호주전에서도 5-2로 앞선 9회 세이브 상황에 등판해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이번 대회를 마쳤다. 3.2이닝 2피안타 무볼넷 6탈삼진 무실점 완벽투. 이번 대회를 통해 박영현은 ‘끝판대장’ 오승환(삼성)의 뒤를 잇는 국가대표 마무리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돌직구를 앞세워 상대 타자를 찍어누르는 모습은 오승환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했다. 박영현의 주무기인 직구는 세계무대에서도 통했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구속도 인상적이었지만, 직구의 RPM(분당 회전수)은 2500을 훌쩍 넘었다. 공 자체도 빠른데다 회전수도 많다보니 힘 있는 중남미 타자들의 방망이도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1년 4개월 앞으로 다가온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박영현의 직구가 어느정도로 통할지 궁금할 정도다.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박영현은 “KBO리그 정규시즌보다 이번 대회 컨디션이 더 좋았다. 직구를 자신 있게 던져서 좋은 개인 성적이 나온 것 같다”고 대회를 마친 소감을 밝혔다.
전성기 오승환을 연상시킨다는 얘기에 박영현은 “롤모델인 오승환 선배와 비교돼 영광스럽다”며 “오승환 선배에게 다가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안주하지 않고 더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박영현 역시 다가올 2026 WBC에 출전해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공을 뿌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는 “올해 초 서울시리즈에서 홈런을 맞았는데 그때는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다”며 “기회가 된다면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해 지금처럼 좋은 컨디션으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타자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밝혔다.
박영현은 지난 3월 대표팀 일원으로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서울시리즈 연습경기에서 혼쭐이 났다 크리스 테일러에게 우월 홈런을 허용했고 헌터 페두시아에게 우전 안타를 내줬다. 박영현은 “기회가 된다면 MLB 타자들을 다시 만났을 때 꼭 삼진을 잡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