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법 개정 멈춰 달라”는 재계의 절규, 국회 외면해선 안 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와 16개 주요 그룹 사장단이 어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상법 개정을 멈춰 달라”는 긴급 성명을 냈다. 재계는 성명에서 “사업재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소액주주 피해를 방지하는 건 필요하다”면서도 “기업경영 전반에 차질을 야기할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 등 다른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경협이 주요 기업과 9년여 만에 한목소리를 내야 할 정도로 재계가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은 기업을 옥죄는 독소조항투성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이사의 총주주 이익 보호 의무 조항까지 넣었다. 명분은 그럴듯해도 위험하기 그지없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데다 자칫 경영진이 일반 주주에게 불리한 결정을 할 경우 손해배상 청구, 형사 고발을 할 수 있는 길까지 터준 것이다.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가 주가가 하락하면 소액주주들이 이사 등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남발할 게 불보듯 뻔하다.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의 1주당 의결권을 부여하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역시 폐해가 클 것이다. 일반 주주들이 지배주주와 표 대결이 가능해진다지만 미국·일본 등이 도입한 후 부작용이 많아 폐지한 걸 곱씹어봐야 한다. 집중투표제는 1998년 개정된 상법에 명시돼 있었지만 회사마다 정관을 통해 배제해 왔는데, 민주당이 이번에 아예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투자 의지를 위축시키고 단기적인 주가관리에만 치중하도록 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펀드 등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국가 없는 국민이 존재하지 않듯 기업 없는 주주도 없다.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미국의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내년 경제 전망이 암울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투자 위축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주식의 상대적 저평가) 심화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 경영 환경이 복잡다단해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경영진이 주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일일이 충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주식회사 제도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상법 개정은 개악(改惡)이다. 야당은 법 개정 대신 주주 이익과 기업 경쟁력을 높일 현실적 방안을 찾는 게 순리다. 연초 윤석열 대통령의 소액주주 보호 발언이 촉발한 상법 개정 논의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정부·여당도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