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세계적인 군함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다. 선박 수출·보수·정비 분야에서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차기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나온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한마디에 K조선이 ‘별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관측이 나왔다. 전체 12분 남짓한 통화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 조선사와의 협력을 콕 집어 요청한 것이라 작지 않은 파장을 낳은 것.
이 발언은 곧바로 ‘트럼프노믹스’로 일컬어지는 ‘반(反)중국’ 기조와 더불어 국내 조선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낳았다. 다른 편에서는 트럼프의 ‘반세계화’·‘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중국의 약진 와중에 고전 중인 K조선 업황에 의외의 타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美, 反中 기조 더 강화… K조선 도약 ‘뱃고동’
이날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직접 특수선 분야 협력에 대해 언급한 데다 중국에 대해선 견제 의지를 명확히 보이고 있다. 그리고 현재 국내 조선사들이 호황기를 맞아 일감을 쌓아놓은 상태라 중·장기적으로 우리에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미·중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군함 등 특수선 분야 생산력·기술력을 모두 갖춘 맹방 국가인 한국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마이클 왈츠 하원의원은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지난 4월 의회에서 발표한 ‘국가해양전략 지침’이라는 보고서에서 쇠퇴한 미국 조선 산업에 비해 230배 큰 조선 산업을 가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아울러 지난 9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토론에서 “한국 최대 조선소인 현대(HD현대중공업)는 1년에 (미국 전체의 10배인) 40∼50척의 배를 생산하고 있다”며 협력 대상으로 직접 한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미 간 조선협력은 이미 공고화 단계다. 한화오션은 지난 8월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시라’함에 이어 이달 급유함인 ‘유콘’함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수주한 상태다. 한화오션은 지난 6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를 전격 인수하며 향후 현지 군함 제조 사업 수주까지 노리는 포석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국내 조선사가 미국의 상선뿐 아니라 군함 수주까지 기대하는 배경에는 미국 조선업의 ‘몰락’이 자리한다. 1970년대 연간 1000척의 선박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1위 생산 능력을 갖췄던 미국 조선업은 높은 인건비, 산업 중심의 이동 등에 따라 현재는 연평균 선박 건조 수량이 10척 안팎에 불과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CSIS가 지난 6월 발표한 ‘초국가적 위협 프로젝트’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이 진수한 구축함은 23척이지만 미국은 11척에 불과하다. 총 전함 수도 미국이 219척으로 중국(234척)보다 적다. 조선업에 필수적인 숙련 용접공 등을 미국 현지서 구할 수 없어서 빚어진 결과다.
트럼프 2기 정부의 ‘반친환경’ 정책도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연료 등을 쓰거나 이를 운반하는 고부가가치선에 비교 우위를 가진 국내 조선사에는 호재다. 트럼프 당선인은 임기 첫날 화석연료 중 하나인 LNG 수출을 재개하겠다고 예고하고 나섰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단한 미국 LNG 수출 프로젝트가 재개되면 이와 연관된 LNG 운반선 발주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2027∼2028년 허가 승인이 필요한 LNG, 셰일 프로젝트는 6800만t 규모로 추정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을 뒤집어 관련 프로젝트가 개발에 돌입할 경우 100척 이상의 LNG선 신규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다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 반세계화 기조는 국내 조선업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고율 관세가 세계적 물동량 감소를 초래했는데 이러한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해운업이 좋아야 조선업 또한 좋아지는데 지난 트럼프 행정부 때 무역분쟁과 자국 우선주의로 세계 물동량이 줄어든 바 있다”며 “이번에도 중국 견제, 고율 관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똑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