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선거법 사건 1심에서 징역형 선고를 받은 이후 여권의 쇄신 논의가 실종되다시피 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누누이 “반사이익에 기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전 정부까지 겨냥한 야권 공격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한 대표 일가족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 비방글을 조직적으로 게시한 것 아니냐는 ‘온라인 당원 게시판’ 논란을 두고는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가 볼썽사나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김건희 여사 의혹 등에 대한 민심은 여전히 따가운데 정부·여당 쇄신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與 지도부, 23초에 1번 野 거론
21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는 ‘이재명·문재인 규탄대회’나 다름없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을 제외한 모든 지도부가 이 대표 사법리스크를 부각하는 데 화력을 쏟아부었다. 한 대표와 함께 여권의 쇄신을 견인해 온 친한계도 “당비로 아버지 이 대표의 변호사비를 대납하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민주당”(장동혁 최고위원) 등 대야 공세에 집중했다.
한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문재인정부에 ‘친중 딱지’를 붙였다. 그는 문 정부가 사드 배치에 관한 기밀을 중국에 유출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언급하며 “지난 정부 당시 3불(不) 1한(限) 기억하느냐. 이건 중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사실상 대한민국의 군사주권을 포기한 행태였다”고 질타했다. ‘김건희 리스크’ 해법 등 쇄신 논의는 일절 없었다. 한 대표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연구개발(R&D) 예산 등 정책 이슈를 언급하긴 했지만, 이 역시 민주당 공세에 맞대응하는 차원이었다.
한 대표는 이날 오후 충북 청주에서 열린 충북도당 당원교육 특강에선 “다음 지선과 대선,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이라며 쇄신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구체적이거나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한 대표는 동시에 “민주당은 이 대표 1인 일극 체제”, “민주당이 정권 잡으면 전체주의적이고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세상이 될 것”이라며 야당 공격에 적잖은 발언량을 할애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최고위에선 ‘이재명’과 ‘이 대표’가 총 46회, 그 외에 야권을 지칭하는 ‘민주당’, ‘문재인’, ‘조국’ 등은 총 63회 언급됐다. 공개회의가 42분가량 진행됐으니 여당 지도부는 23초에 한 번꼴로 야권에 대해 발언한 셈이다. 여권을 지칭하는 ‘윤석열’, ‘국민의힘’, ‘당정’ 등은 총 25회 언급되는 데 그쳤다. ‘쇄신’과 ‘변화’는 각각 4회, 3회씩 언급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친윤계 김재원 최고위원이 당원 게시판 논란에 대한 한 대표의 해명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친윤-친한 주도권 싸움 ‘눈살’
김 최고위원은 한 대표 면전에서 “적어도 이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선고(오는 25일) 때까지는 이 문제를 일단락 지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래야만 우리 당의 쇄신, 변화의 목소리도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친윤계는 한 대표의 장인·아내·딸 등 가족이 윤 대통령 부부 비방글을 쓴 게 맞는지 가려야 한다며 당무감사 착수를 요구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이 대표 사법리스크를 언급하며 방어막을 쳤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원 게시판 논란과 관련해 “이 대표 선고와 민생 사안이 많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제가 건건이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돼서 다른 이슈들을 덮는 게 적절치 않다는 당대표로서의 판단”이라며 “불필요한 자중지란에 빠질 일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친윤계가 공세를 멈추지 않고 한 대표는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당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파 간 주도권 싸움 양상으로 흐르며 쇄신 동력이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동혁 최고위원은 MBC 인터뷰에서 친윤계를 겨냥해 “그분들은 한 대표의 정치적 생명을 끝내려고 마음먹고 달려드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판단을 받으려면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서범수 사무총장은 당원 게시판의 익명성을 보장해야 할뿐더러 당헌·당규상 일반 당원은 당무감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