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주도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실질적 인건비와 운영지원 경비, 법률비용 등을 삭감했습니다. 각종 정부 예산 삭감에 부처에선 “일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들립니다. 방송장악용 예산이라고 주장하는 야당과 거대 야당이 정부 필수 예산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여당이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전체금액은 증액, 인건비 등은 삭감
22일 국회와 방통위 등에 따르면 국회 과방위는 당초 방통위 예산 정부 안에서 10억원가량 증액시켰지만 실질적 인건비, 예컨대 방통위 본부 총액 2억4800만원 및 운영지원과 기본경비 3억500만원, 기획조정관 기본경비 6억8200만원 등은 삭감했습니다.
여야의 이견이 가장 컸던 부분은 2억5000만원가량 줄어든 본부 총액 항목입니다. 당초 야당 위원들은 위원장, 부위원장, 방통위원 3인 인건비 전액 삭감과 공석인 방통위원 3인 인건비 전액 삭감, 위원장 연봉 전액 삭감 등을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민주당이 주장해온 방통위 운영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인 방통위원들의 인건비 예산을 삭감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여당 의원들은 국회 몫 방통위원 추천을 하지 않을 속셈이냐고 따지자, 야당에선 전체 인건비의 1% 가량(2억4800만원)을 삭감하는 것으로 한발 뒤로 물러났습니다.
민주당은 운영지원과 기본경비를 3억원 이상 감액시켰는데 차량유류비 삭감이 눈에 띕니다. 야당 과방위원들은 방통위원장 및 방통위원 차량유류비는 전액 삭감했고, 차량임대료(임차료)도 50% 감액돼 기존 차량 지원이 8대에서 4대로 줄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와 함께 국내 여비(출장비) 70%, 일반수용비(택시비 등) 50%를 각각 삭감하는 등 대외 업무를 봐야 하는 직원들의 손발도 상당 부분 묶이게 되죠.
방통위 감액분은 대부분 방통위 간부 인건비입니다. 과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방통위 상임위원 3인이 언제 임명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예산이 과다 측정됐다며 상임위원 인건비 예산 중 2억4800만원을 감액했습니다. 여기에 민간독립기구인 방심위의 지원금은 36억9600만원도 삭감됐습니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연봉과 사무총장 등 연봉도 삭감에 포함됐습니다. 예산안 심사에서 인건비를 삭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방통위 안팎에선 “지금까지 사업지에 대한 예산 삭감 및 증액은 있었지만, 인건비를 건드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당 위원들은 “수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여당 간사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방통위가 현재 1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로 내년 예산 상당 부분을 삭감했는데, 이는 방통위를 더욱 마비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 과방위 소속의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도 “어제 야당에서 국회 몫 방통위원 추천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하더니, 오늘은 사실상 방통위원이 공석이라 예산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며 “야당의 갈지(之)자 행보는 결국 방통위 행정마비를 즐기며 방통위원을 추천할 뜻이 사실상 없음에도 여론을 의식해 말만 앞세우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치적 논란 예산은 삭감vs필수예산도 삭감
야당 측은 방심위 등 정치적 논란이 있었던 예산은 삭감하고 민생예산 오히려 증액했다는 주장입니다.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설명자료를 내고 “방송장악 예산을 대거 삭감하고, 대신 민생예산을 대폭 증액했다”고 자평했죠. 정 의원이 주도해 삭감한 예산은 방통위 본부 기본경비와 운영지원 예산, 소송대리인 선임료 등 15억원입니다.
문제는 야당이 삭감한 예산 중에도 방통위와 방심위에 꼭 필수적인 예산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방통위 기획조정관 기본경비(6억8200만원) 중 절반인 3억5000만원은 소송비용입니다. 즉 방통위의 심의 및 과징금 등 제재결정에 대해 기업이 소송을 걸어오면 사용해야 하는 필수 경비입니다. 특히 인 앱 결제와 관련해서 구글과 애플 측에 수백억 원의 과징금 부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행정소송을 걸어올 경우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할 비용입니다.
디지털성범죄 관련의 경우에도 텔레그램 등 거대 외국 기업들과의 소송전 및 현지 조사(국외 여비 70% 삭감)도 차질이 예상됩니다.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은 “방통위 조직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기본경비가 삭감돼 관련 사업 추진이 원만하게 이행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직원들이 큰 어려움을 겪진 않을지 우려된다”면서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다시 증액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드린다”고 했습니다.
사실 방통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 중에서도 야당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제기한 사업은 전액 삭감됐습니다. 용산 어린이정원 과학기술 체험관 운영 예산 7억4000만원은 다른 민생 사업보다 추진할 필요성이 적다는 이유로 전액 깎였고, 바이오·의료 기술개발 예산 중 정신건강 관리 과제 50억원도 삭감됐습니다. 범부처 연구개발(R&D) 조정 사업 예산 20억 원 등 각종 R&D 예산은 증액된 가운데, 민관합작 원자로 수출 기반 구축 사업 R&D 예산은 63억원 감액됐고, 원자력안전위원회 예산은 총 16억3000만원 늘었는데, 이 가운데 16억원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모니터링 명목의 증액분입니다.
한편 민주당은 ‘이재명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은 정부의 0원 편성안을 무시하고 2조원 증액했습니다. 17개 상임위별 예산 중 단일 항목으론 가장 큰 증액입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그간 부정 사용과 중복 지원 등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