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대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대북 정책을 의식한 구체적인 첫 발언을 내놨다. 미국과의 과거 협상이 결국 ‘적대적 대북정책’을 확신하게 했다며 트럼프 당선인과 쉽게 만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북미 대화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21일 평양에서 열린 무장장비전시회 ‘국방발전-2024’ 개막식 기념연설에서 북미 정상회담 재개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에 일단 선을 긋고 비핵화 협상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강조했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현대전 경험 및 최신 무기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데 대한 자신감, 북러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국방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초대국의 공존의지가 아니라 철저한 힘의 입장과 언제 가도 변할 수 없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대북)정책이었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으로 친분을 쌓은 것을 강조해 온 만큼 그의 재선 후 다양하게 제기되는 북미 정상회담 및 협상 재개 관측에 이 같이 회의적으로 답변한 것으로 보인다.
경남대 임을출 교수(극동문제연구소)는 김 위원장의 이러한 인식과 평가에 대해 “대단히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북한의 핵무력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데 필요한 내부적 정당성, 합리화 논리인 동시에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트럼프 취임을 앞두고 미국과의 협상 여지를 차단하는 메시지를 통해 미국의 반응을 탐색하고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내포된듯 하다”며 “트럼프 당선 관련 첫반응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대북 압박을 위해 핵을 공유하는 군사동맹을 확대하고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고 있다면서 “(한반도가 지금처럼) 가장 파괴적인 열핵전쟁으로 번져질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반 현실은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최강의 국방력, 이것만이 유일한 평화수호이고 공고한 안정과 발전의 담보임을 매일, 매 시각 절감케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비핵화 협상을 의식한듯 “우리 당과 정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국가의 안전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손으로 군사적 균형의 추를 내리우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임을 다시금 분명히 한다”고 다짐했다.
임 교수는 “북미 대화에 선을 그었다기보다는 ‘핵무력 고도화’와 동시에 ‘적대시 정책 선 철회’라는 협상재개 조건을 다시 부각시키면서 트럼프를 이중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으로서는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진 핵무력, 러시아와의 군사동맹 강화 등 강력한 협상카드를 쥔 상황인 만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의 북러관계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은 당분간 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진영외교와 국방력 강화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관측된다.
양 교수는 “북한은 2018년 당시와 달리 지금은 핵무력의 엄청난 고도화를 바탕으로 핵군축협상 가능성에 무게 중심을 둔 상황”이라며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위해 줘야 할 반대급부를 감안하면 빅딜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