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집단행동 불참자들의 신상을 담은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직 전공의가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검찰과 공방을 벌였다.
사직 전공의 정모씨의 변호인은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이용제 판사 심리로 열린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 첫 공판에서 “객관적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법률적 평가는 스토킹 범죄로 처벌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스토킹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지속적,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을 스토킹 행위로 보고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정씨 측은 “범죄 일람표에 기재된 피해자가 1100명인데, 그중 485명의 경우 개인정보 게시가 1~2회에 그치고, 44명의 경우 3회에 불과하다”며 “개인정보 공개 행위가 지속적, 반복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 중 일부만이 피고인의 행위로 불안감과 공포심,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고 진술할 뿐 나머지는 단순한 불쾌감을 이야기했다”며 검찰의 기소는 스토킹의 법적 구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스토킹 처벌법 개정으로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공개한 행위도 처벌할 수 있다며 반박했다. 국회는 올해 1월부터 스토킹의 새로운 유형으로 정보통신망에 개인정보를 지속적·반복적으로 올리는 행위를 처벌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검찰은 “(스토킹은) 일반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 집단 소속일 경우가 많고 다수가 소수에 대해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지속하는 양상을 보인다”며 “본건에서도 피해자들은 의료계에서 상대적으로 극소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건 명단 게시는 ‘온라인 좌표 찍기’ 성격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인터넷 상 집단괴롭힘) 행위”라면서 “피고인이 게시한 명단 게시자 중 피해가 없었다고 진술한 피해자는 1명뿐”이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지난 6∼9월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에 반발하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의대생의 신상정보를 담은 명단을 만든 뒤 텔레그램과 의사·의대생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 게시한 혐의로 지난달 15일 구속기소 됐다. 정씨는 의료현장을 지키는 전공의·전임의·의대생 등 1100여명을 ‘감사한 의사’라고 비꼬며 이들의 소속 병원과 진료과목, 대학, 성명 등을 온라인에 26회에 걸쳐 배포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