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선 선로 깔린 성토사면 잘라내며 안전은 '뒷전'

시공사, 설계 없는 가시설로 '땜빵' 조처…뒤늦게 보강하고 "문제없다"

호남고속철도2단계 공사 과정에서 현재 열차가 운행 중인 호남선 임시 선로의 성토사면을 안전성 검토도 없이 잘라낸 것으로 드러났다.

성토사면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뒤늦게 보강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공사는 "(처음부터) 기울어지도록 시공했다"는 근거 없는 해명만 내놨다.

지난 14일 전남 나주시 다시면 호남고속철도2단계 공사 구간에서 호남선 열차가 다니는 선로의 성토사면이 잘려 나간 채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남 나주시 고막원역 인근 호남고속철도 2단계 공사 과정에서 시공사는 현재 호남선 열차가 지나다니는 임시 선로의 성토사면을 열차 진행 방향으로 6m가량 잘라낸 것으로 드러났다.



임시 선로의 교량(가교)을 안전하게 받쳐주기 위해 쌓아둔 흙더미가 신설 공사 지점과 겹쳐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잘려 나간 흙더미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 조치가 필수적이었지만 설계에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절개된 성토사면은 그 자체로도 무너지려는 성질이 있는데 그 위를 빠르게 지나는 열차와 초근접 지점에서 이뤄진 또 다른 터파기 공사 등의 영향으로 더욱 큰 붕괴 압력이 가해졌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안전 조치가 누락된 설계로 시공이 됐다면 흙더미가 붕괴해 작업자들의 안전은 물론 선로 변형이나 열차 이탈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그나마 시공사 측은 성토사면 절개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흙막이 가시설(보강 가시설)을 설치했다.

시공사는 "설계에도 없는 안전조치를 선제적으로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한 땜빵식 조처에 불과했다.

성토사면이 무너지는 압력이 얼마나 큰지, 그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적절한 조처는 무엇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가 불거지자 시공사 측은 절개 사실은 밝히지 않은 채, 마치 필수적이지 않은 안전시설을 추가한 것이어서 별도의 안전 검토가 필요 없었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토목구조 관련 전문가는 "처음부터 구조(안전) 검토를 했다면 이런 형태의 가시설을 시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가시설을 세우면서 구조 검토가 필요 없었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14일 전남 나주시 다시면 호남고속철도2단계 공사 구간에서 호남선 열차가 지나는 선로의 성토사면을 받치고 있는 흙막이 가시설이 기울어져 있다. 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안전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이 흙막이 가시설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기울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뒤늦게 가시설을 받쳐주는 버팀보(지지대)를 2차례에 걸쳐 설치하고, 기울어짐 정도를 측정하는 계측을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으로 의심된다.

흙막이 가시설에는 계측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가시설이 얼마나 기울었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국가철도공단은 "(처음부터) 기울어지게 시공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냈지만, 기울어지게 시공했다는 근거 자료는 제시하지 못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