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기회 적은 농촌지역 찾아가 메시지 보내기·인터넷 송금법 등 노인들에 스마트폰 활용법 교육 “생활의 질 높아져” 긍정적 평가
교육 받은 노인들 보조강사 역할 눈높이 수업으로 교육 효과 높여 입소문 타면서 참여 기관 증가세 “2024년 자격증 취득률 80%가 목표”
여든을 앞둔 심숙희(79)씨에게 요즘 스마트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코레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동생 집에 갈 기차표를 끊고, 손주들 생일이면 기프티콘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스마트폰의 ‘페이’ 기능을 이용해 용돈을 보낼 때도 있다. 작년 초만 해도 엄두도 못 냈던 일들이다. 그러나 지난해 경북 경산시어르신종합복지관에서 스마트폰 등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디지털튜터 양성교육’을 받은 뒤 삶이 달라졌다. 심씨는 “예전엔 스마트폰을 오로지 전화하는 데만 썼다. 기차표도 역에서 줄 서서 끊었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못 보냈다”며 “이젠 가족들과 소통도 많이 하게 되고, 생활이 편해졌다”며 웃었다.
최근 기차표 예매, 음식 주문 등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반 비대면 활동이 늘면서 많은 이들의 삶이 편리해졌다. 이는 디지털기기를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은 더욱 불편해졌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디지털기기 사용이 미숙한 노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넘어 불이익을 겪는 ‘디지털 소외’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해부터 교육 기회가 적은 농촌 지역으로 찾아가 노인들에게 스마트폰 활용법 등을 교육하는 ‘마을愛(애) 온 디지털 배달부(이하 디지털 배달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선 또 다른 노인들이 ‘보조강사’가 된다.
◆“스마트폰 활용법 배워 생활 편해져”
24일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3.9%로 전국 2위다. 모금회 관계자는 “경북은 노인 인구 비중이 매우 높고 농어촌 지역이 많아 정보 접근성이 열악하다”며 “노인들이 직면하는 디지털 소외 문제가 더욱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2023)’에 따르면 컴퓨터·모바일 이용 능력인 ‘디지털정보화 역량’은 일반 국민 평균 수준이 100이라고 했을 때 20·30대는 130%가 넘었으나 60대는 61%, 70대 이상은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디지털 배달부는 노인들에게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활용, 인터넷 송금, 내비게이션 등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디지털 기술 사용법을 알려줘 이들의 생활 질을 높인다는 목표다.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해부터 사랑의열매로 모금된 후원금을 활용해 디지털 배달부에 연간 1억9800만원을 투입하고 있다. 사업 수행기관은 지난해 관내 6곳(경산시어르신종합복지관, 금성·김천·안계·영주·의성노인복지관)에서 올해 9곳(경산시·양양군·예천군노인복지관 추가)으로 늘었다.
사업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지역 노인복지관에서 16회 이론 교육을 통해 노인들을 보조강사인 ‘디지털튜터’로 양성하고, 이들과 전문강사가 함께 농촌 등 디지털 사각지대 마을을 찾아가 지역 노인들에게 스마트폰 교육 등을 한다.
사업에 참여한 이들은 이런 교육이 일상을 바꿨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경산시어르신종합복지관에서 디지털튜터 양성교육을 들은 이명용(65)씨는 “예전엔 기차표를 사러 역에 갔는데 매진이어서 못 산 적도 있다”며 “이젠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어 아주 편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코레일, SRT, 택시호출 앱 등이 깔린 자신의 스마트폰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함께 수업을 들은 심숙희씨도 ”예전엔 자녀들이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배달시키는 것이 신기했는데 이제 나도 할 수 있다”며 “최근 지인들과 식당에 가서 키오스크로 주문했더니 ‘대단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예전 같으면 주문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활용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간 소통도 늘었다. 지난해 교육에 참여한 김모(85)씨는 “메시지 앱을 설치하고 처음으로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며느리가 감동해 울어서 나도 함께 울었다”며 “평소 전화로는 마음을 다 전달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도 메시지를 활용해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고 전했다.
◆노인들이 보조강사로… 교육 효과↑
디지털 배달부 사업이 기존 노인 디지털 교육과 다른 점은 교육을 받은 노인들이 보조강사가 된다는 것이다. 경산시어르신종합복지관의 경우 지난해 4∼6월 15명이 디지털튜터 양성교육에 참여했고, 이 중 14명이 디지털튜터로 활동했다. 디지털튜터들은 2인씩 조를 나눠 각자 9∼10회가량 마을에 나가 스마트폰 앱 활용, 사진촬영, 메시지 보내기 등 교육을 진행했다.
복지관 관계자는 “어르신마다 스마트폰 모델도 다르고 인지능력도 달라 강사 1인으로는 원활한 수업 진행이 어려운데 보조강사들이 함께 가면 교육 질이 높아진다”며 “특히 같은 어르신들이 알려주니 배우는 분들도 자신감이 더 생기고 교육 효과도 높다”고 말했다.
경산시어르신종합복지관에서 교육을 듣고 디지털튜터로 활동한 김판호(76)씨는 “같은 또래가 알려주니 더 편하게 생각하고 의욕적으로 배운다”며 “젊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우리에겐 편하게 물어본다”고 말했다. 경북 지역에선 지난해 18개 마을에서 300여명이 20회에 걸쳐 스마트폰 교육을 들었고, 이들의 스마트폰 활용 척도 점수가 크게 향상되는 성과를 이뤘다.
경산시어르신종합복지관에선 올해에도 14명이 디지털튜터 양성과정을 듣고 있다. 이달까지 16회 교육이 끝나면 내년 5월까지 경산 지역을 돌며 디지털튜터로 활동하게 된다. 디지털튜터들에겐 생활의 활력이 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디지털튜터 양성교육을 듣고 있는 이명용씨는 “배웠던 것을 가르치면서 나도 내용을 한 번 더 상기할 수 있고, 배우는 분들이 고마워하는 것을 보며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디지털튜터들에게는 소정의 활동비도 지급된다. 지난해 일부 디지털튜터들은 스마트폰 활용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올해에는 참여자의 자격증 취득률을 80% 이상으로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교육에 참여 중인 어르신들은 이런 기회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경산시어르신종합복지관에서 ‘2회차’ 수업을 듣고 있는 김판호씨는 “수업을 들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주변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은데 전국에 많이 확산해 노인들이 배울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숙희씨도 “디지털 수업은 한번 배워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을 수 있고 키오스크 등도 계속 변해서 장기적으로 꾸준히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산시어르신종합복지관은 “올해에는 작년보다 교육 참여 마을 수를 늘려 더 많은 어르신에게 디지털 교육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