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장품 샘플 모음 모두 1만원에 팔아요."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는 화장품 샘플을 판매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고물가에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화장품을 쓰려는 '짠물 소비'를 겨냥한 것이다. 간혹 무료 나눔 글이라도 올라오면 거래는 눈 깜짝할 새 완료되곤 한다.
#2.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화장품 제품군인 '프라다뷰티'는 고물가 속에서도 지난 8월 한국에 정식 매장을 냈다. 매장 개장 전 진행한 팝업에는 하루 1천200명이 몰렸다. 프라다뷰티의 제품 가격은 랑콤, 에스티로더 등 기존 백화점 고가 브랜드보다도 비싼 편이다. 어그멘티드 스킨 라인의 세럼은 55만원, 크림은 54만원에 각각 판매된다.
25일 유통·화장품업계에 따르면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화장품 시장에서 양극화 소비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10대를 중심으로 샘플을 묶어 판매하는 중고 거래나 용량을 줄이고 가격을 낮춘 균일가 제품이 주목받는 동시에 백화점에서는 명품으로 불리는 고가 브랜드 화장품 매출이 10∼20%대 신장률을 보인다.
저렴한 화장품을 찾는 수요는 중고 거래뿐만 아니라 1천원 이하 균일가 제품만 판매하는 다이소 화장품 인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다이소 기초화장품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240%, 색조화장품 매출은 130% 각각 증가했다.
다이소의 3천원짜리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은 6만원대 샤넬 립앤치크밤과 비슷하다는 입소문을 타며 한때 품절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최근 화장품 트렌드는 10대들이 이끌고 있다"며 "이들 10대는 용돈을 받아 쓰다 보니 1천∼2천원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0대는 한 브랜드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데 품질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 구매가 폭발적으로 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저가 제품이 인기를 끌자 아모레퍼시픽[090430], LG생활건강[051900], 애경산업[018250] 등 국내 대표 화장품 대기업들도 잇달아 균일가 시장에 뛰어들어 다이소에 5천원 이하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불황에 소비를 결정하는 데 '가격'이 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면서 최근에는 편의점까지 나서 용량을 줄이고 가격을 낮춘 기획 제품을 내놓고 있다. GS25는 700원짜리 마스크팩을, CU는 3천원짜리 기초화장품을 각각 내놨다.
반면 고급 화장품 시장도 탄탄한 성장세를 보인다.
올해 10월까지 롯데백화점 화장품 매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10% 증가했다. 이중 명품 브랜드가 많이 포함되는 색조화장품 매출만 보면 증가율이 25%에 이른다.
이 기간 신세계백화점의 명품 화장품 매출은 16.1% 증가했다. 올해(1∼9월) 현대백화점의 명품 화장품 매출 신장률은 13.1%를 기록했다.
이런 명품 화장품에 대한 높은 수요를 반영하듯 올해 하반기에는 프라다뷰티가 국내에 상륙했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더현대 서울에 매장을 운영 중이다.
명품은 아니지만 일반 화장품 업체들도 주름 개선, 미백 등 기능을 더한 고가라인을 추가 출시에 나섰다.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의 자체 화장품 브랜드 연작은 지난 4월 고가 피부관리 라인 알파낙스를 백화점 오프라인 매장 단독 상품으로 출시했다.
항노화에 효과적인 특허 성분을 함유한 라인으로 가격은 기존 제품보다 2배 이상 비싸다.
이 밖에 쿠팡은 에스티로더, 르네휘테르 등 고급 화장품 전용 로켓배송 서비스인 '알럭스'(R.LUX)를 지난달 선보였다. 쿠팡은 럭셔리 서비스인 알럭스가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황과 고물가 상황에선 소비 양극화가 심화한다며 이런 현상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불황과 고물가 시기에 소비 양극화가 더욱 두드러진다"며 "화장품 소비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소년이나 서민층은 아주 저렴한 화장품에 더 쏠리고 프리미엄 제품을 소비하던 계층은 계속 고가 상품을 찾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실제 체감하는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양극화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