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는 영부인과 어디에나 있는 영부인, 국민은 누구를 원할까.
정치·문화적 배경에 따라 바라는 영부인상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그 역시 변하기에 단언을 내릴 수 없다. 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이고, 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다. 두 사람 다 전통적인 영부인상은 아니어서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는 트럼프 당선인이 처음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2017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 배런의 학교 문제를 이유로 몇 달간 백악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국제·외교 및 중요한 국내 행사에만 참석했을 뿐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다른 대외 활동과 언론 인터뷰를 피해 ‘대중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퍼스트레이디’로 불렸었다. 4년 만에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지만 이번에도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데다 백악관으로 거처를 완전히 옮기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은둔의 영부인’에 이어 최초의 ‘파트타임 영부인’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겼다.
반면 김 여사는 윤 대통령 임기 절반에 이르는 동안 너무 자주 등장했다. 윤 대통령 취임 전 불거진 허위 경력과 논문 표절 논란에 스스로 약속했던 ‘조용한 내조’는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와 국정감사, 언론엔 논란이 되는 행보와 의혹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졌다.
총선 정국에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 파동으로 당내 분열을 키웠고, 정치 브로커 명태균과 국민의힘 공천·당무에 개입한 정황뿐 아니라 대통령실과 정부 각 부처 인사 개입설이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 부인의 광폭 행보는 야당에 정치 공세 빌미를 제공했고, 대통령의 지지율을 10%대까지 끌어내려 결국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게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통령 배우자의 정치화가 가져올 정치적 재앙을 막기 위해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활동을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김 여사 논란의 본질은 단지 그가 선출된 권력이 아니어서도, 그의 권한을 뒷받침해 줄 법이 없어서도 아니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김건희 악마화’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대통령 부인의 입김과 그림자가 닿은 곳마다 원칙과 공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이희호 여사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청와대의 야당’이라 불리면서도 국정이나 인사 개입으로 구설에 오르지 않고 정치적 동반자로 인정받은 이유를 새겨 봐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 활동을 지원하고 내조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과 권력을 공유하거나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통령더러 부부싸움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국민의 눈높이와 기대도 살펴 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