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치동 아이들이 먹는 ‘똘똘이약’, 3년 만에 2배 ‘껑충’ [입시N년생②]

<편집자주> 강남(江南)은 ‘강의 남쪽’ 지역으로, 서울에서는 한강 이남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강남을 한강 이남 동쪽에 있는 강남 3구 지역으로 떠올린다. 부유한 자산가들이 사는 그곳, 평당 2억의 상상을 초월하는 집값, 이외에도 강남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교육열’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입시 경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갈수록 경쟁은 더 정교해지고 기형적인 모습이 돼가고 있다. 이 아이들은 행복할까? ‘입시 N년생’을 사는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글 나가는 순서>

1화 기저귀 차고 ‘4세 고시’…강남엔 ‘영어유치원’이 더 많다 [입시N년생①]

2화 대치동 아이들이 먹는 ‘똘똘이약’, 3년 만에 2배 ‘껑충’ [입시N년생②]

3화 “우리 대학은 몇 등이지?”...위태롭고 우울한 아이들 [입시N년생③]

 

지난 14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입시학원 건물 앞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이 모여있다. 국윤진 기자

 

지난 14일 밤 10시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입시학원 건물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건물 앞에는 부모들의 ‘라이딩’ 차량 20여대가 어김없이 학생들을 맞이했다. 수능 시험이 치러진 당일이었지만, 다음 수능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쉼은 없었다.

 

이날 대치역 앞 한 햄버거 가게에서 만난 고등학교 2학년생 이모(17)군. 식사를 마치자마자 익숙한 듯 입에 알약을 털어 넣었다. 같은 반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추천받은 약이다. 그는 “6월 모의고사 때부터 성적이 떨어져 약을 먹게 됐다”며 “처음엔 페니드를 먹었고 지금은 콘서타로 용량을 늘렸다. 같은 반에 4~5명은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밤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입시학원 건물 앞에 학생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의 차량이 줄을 잇고 있다. 국윤진 기자

 

실제로 이날 본지 기자가 대치동에서 만난 학생 5명 중 1명은 이 약을 먹어본 적 있거나 현재 먹고 있다고 답했다. 수능 가채점을 위해 학원을 찾은 김모(18)양도 “약을 먹은 지 1년이 다 돼간다”고 했다. 그는 “약과 커피를 같이 먹기도 한다”며 “6시간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수능 시험 직전 하나만 먹고 버틸지 아니면 영어 시험 전에 하나 더 먹을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들이 먹고 있는 약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ADHD 치료제다. ‘콘서타’, ‘페니드’, ‘페로스핀’ 등의 약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약들의 주요 성분은 ‘메틸페니데이트’. 메틸페니데이트는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각성을 높여 일시적으로 인지 기능을 향상시킨다.

 

학군지를 중심으로 ‘공부 잘하는 약’, ‘똘똘이약’으로 알려지면서 남용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대치동의 한 학부모는 “대치동 애들은 거의 대부분 먹는다고 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그래픽= 양혜정 기자

 

◆ 아동청소년 ADHD 치료제 처방…3년 만에 2배 ‘껑충’

 

세계일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뢰해 ‘최근 5년간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현황’을 분석한 결과, 10대 청소년 처방 건수는 2020년 32만4179건에서 2023년 59만7892건으로 3년 만에 두 배가량 증가했다. 올해 6월까지 34만3977건이 처방됐는데, 이 추세대로라면 지난해 수치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비급여로 받는 경우를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과 교수는 “ADHD가 아니어도 집중이 안 돼서 일상생활이 어렵다고 하면 처방해주는 의사가 많을 것”이라며 “3개월 치를 한꺼번에 처방해주는 장기 처방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동기 처방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20년 17만8022건이던 10세 미만 아동 처방은 2023년 32만9976건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대개 ADHD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치료를 위한 처방도 많지만, 일찌감치 공부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조금만 산만해도 처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40대 여성 A씨는 “대치동에서는 아이가 조금 산만하다 싶으면 교사가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며 “그 말을 듣고 충격 받았는데 이 동네에서 얼마나 (약을) 처방받는 게 만연하면 학교 교사가 그렇게 얘기하겠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대치동 학원가 간판. 국윤진 기자

 

미성년자만의 일이 아니다. 입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N수생들 사이에서는 이 약이 낯설지 않다. 재수생 박모(19)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ADHD로 진단받고 약을 먹어왔다”면서 “최근에는 약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커피랑 포도당 캔디에 약을 같이 섞어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N수생 대상 과외교사 B씨는 “상담을 해보면 성인이 돼서도 약을 못 끊고 계속 복용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가르치고 있는 학생 중 ADHD 치료제와 함께 수면장애나 공황장애, 불안장애 약을 같이 먹고 있는 친구들만 4명”이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20대가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약을 처방받은 건수는 53만건에 육박했다. 3년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약. 국윤진 기자

 

◆ “약 끊기가 마약만큼 어려워”…중독성에 내성 심각

 

문제는 이 메틸페니데이트의 중독성이다. 각성 효과가 마약만큼 강력하기 때문에 끊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으로 만든 약 중 ‘페니드’와 ‘페로스핀’은 효과가 강력한 만큼 의존성이 높다.

 

지난 9월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성인에게 페니드와 페로스핀 약을 처방할 수 없도록 제한했지만, 이마저도 수면 발작 증상의 경우엔 예외를 뒀다. 또 상대적으로 효과는 덜하지만 지속 시간이 긴 ‘콘서타’의 경우엔 성인과 미성년자 모두 처방이 가능하다. 마음만 먹으면 우회해서 처방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는 셈이다.

 

10년 넘게 약을 복용해온 40대 남성 C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페니드와 페로스핀 약을 하루에 10알 넘게 먹고 있다. 내성이 생겨 웬만큼 먹어도 효과가 없어서다. 약을 끊으면 집중력이 흐려져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대리 처방을 받기도 한다.

 

이준희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 등 다른 증상이 동반될 경우 이 약이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어 끊어야 하지만, 어릴 때부터 복용해 온 환자들은 절대 못 끊는다고 해 (저와) 승강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12일 오전 서울성모병원 이준희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 환각, 망상, 자살 시도까지…“우울·불안 있으면 복용 삼가야”

 

다른 부작용도 문제다. 두통, 불면증, 식욕 감소부터 심하면 환각, 망상, 자살 시도까지 일으킬 수 있다. 이준희 교수는 “제일 흔한 건 각성 효과로 약을 먹으면 두근거리고 불안해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심하면 불안 증상이 공황 발작처럼 강하게 오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 젊은 남성은 콘서타 복용 후 식욕 감소로 살이 너무 빠져서 복용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울증과 불안증, 조현병 등 다른 증상이 있으면 이 약을 복용해선 안 된다. 증상이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 박성열 서울마음숲클리닉 원장도 “일반인이 먹으면 커피를 많이 마신 느낌 또는 각성되는 느낌이 들지만, 불안이 높은 사람의 경우엔 집중력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중독성과 부작용 우려에도 학군지에서는 약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지금 주문 넣어도 품절이라 못 받을 정도로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