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저녁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1200석 규모 공연장은 남녀노소 관객들로 꽉 들어찼다. 그토록 기다렸던 브로드웨이 대작 뮤지컬 ‘알라딘’의 한국 초연 개막 무대에 함께한 관객 대부분 상기된 표정이었다. ‘알라딘’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붉은색 양탄자 수십 장을 이어붙인 대형 막이 올라가자마자 램프의 요정 지니가 엄청난 입담과 흥겨운 넘버(노래) ‘아라비안 나이츠(Arabian Nights)’로 분위기를 달궜다. 자연스레 객석도 들뜨고 관객들은 곧장 신비로운 아그라바 왕국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 뮤지컬은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알라딘과 지니의 우정을 다루며 1992년 개봉해 세계적 흥행을 기록한 동명의 디즈니 애니메이션(만화영화)이 원작이다. 2019년 윌 스미스가 지니 역으로 출연한 실사 영화도 큰 인기를 끌었다.
디즈니 시어트리컬 그룹은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노틀담의 꼽추’, ‘타잔’, ‘인어공주’에 이어 ‘알라딘’을 6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원작 뮤지컬로 선보였다. 토니상·아카데미상·그래미상을 다수 받은 앨런 멩컨(작곡), 하워드 애슈먼·팀 라이스(작사), 케이시 니컬로(연출·안무) 등 최고 창작진이 참여해 2011년 미국 시애틀에서 첫선을 보였다. 시범 공연을 통해 계속 다듬은 뒤 2014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 지금도 공연 중이다. 10년 동안 뮤지컬 ‘알라딘’은 전 세계 11개 프로덕션(제작소)에서 2000만명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고, 이번에 12번째 프로덕션으로 한국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가장 큰 관심사는 원작에서 조그마한 요술 램프를 들락날락하며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요정 지니가 뮤지컬에서 어떻게 구현됐을지다. 지니는 친근한 ‘쇼맨’으로 설정돼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원작 그대로 무대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만큼 연극적인 상상력으로 표현한 것이다. 니컬로 연출은 지난 8월 화상 인터뷰 당시 “지니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며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지니를 변하게 하기보단 스탠드업 코미디 같은 연기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정성화가 연기한 지니는 등장할 때마다 독무대를 방불케 했다. 밉살스럽지 않은 익살에다 한국식 유머를 곁들인 넘치는 에너지로 좌중을 휘어잡으며 웃음 제조기 역할을 도맡다시피 한다. 원작 뮤지컬 그대로 공연하는 레플리카 판이지만 프로덕션별로 현지 관객 취향에 맞춰 대사와 가사를 일부 손질할 수 있게 한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예컨대 아그라바에서 유명한 것을 소개할 때 램프와 비슷하게 생긴 양은 주전자를 꺼내 보이며 ‘텀블러’라 하고, 소원이라면 ‘신형 피라미드 분양권’도 줄 수 있다며 롯데 시그니엘 타워를 제시해 폭소를 자아낸다. 또 알라딘이 “왕자로 만들어 달라”고 첫 번째 소원을 말하자 “지금부턴 내가 풀코스 왕자 요리사! 이븐하게(골고루) 구워드릴게요∼”라 하고, “어디서 나왔냐”는 물음에 “잠실역 3번 출구에서 왔지!”라며 천연스럽게 답하는가 하면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히트곡 ‘아파트’까지 부르는 등 감칠맛 나는 대사와 즉흥 연기로 흥을 돋운다.
특히 지니가 공연 시작을 알린 후 퇴장했다가 1막 후반부 황금 동굴에서 나타나는 장면은 ‘알라딘’의 백미다. 지니가 인기 넘버 ‘나 같은 친구(Friend Like Me)’를 부르며 알라딘, 앙상블 배우들과 탭댄스 등 역동적인 춤을 추고 마술쇼까지 하는데 황홀경 그 자체다.
알라딘과 자스민이 특수효과를 동원한 마법 양탄자(매직 카펫)를 타고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날면서 가장 유명한 넘버 ‘완전히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을 부르는 장면 등 다른 볼거리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