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가 최근 온라인 베팅에 사용되는 가상자산을 상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업비트는 해당 코인을 상장하면서 관련 정보에 이 같은 사행성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여파로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 열기가 뜨거워진 상황에서 거래소들이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코인을 앞다퉈 상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업비트에 따르면 ‘드리프트(DRIFT)’ 코인은 지난 8일 업비트 원화 거래소에 상장했다. 이 코인은 조세회피처로 흔히 등장하는 케이맨제도에서 지난 5월 발행된 코인으로 자사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베팅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리프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베팅은 스포츠, 선거, 가상자산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승부예측을 하고 스테이블 코인(달러와 가치가 연동된 가상자산) 또는 가상자산을 걸면 결과에 따라 베팅 금액을 얻거나 잃는 형식이다. 사실상 온라인 사설 도박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대선 기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 카멀라 해리스 대통령 후보의 당선 결과에 대한 베팅이 이뤄졌다. 이 베팅에 걸린 금액만 2366만달러(330억원)에 달했다. 지난 9월에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것인지에 대한 베팅이 열렸고 미국 레이싱 경기인 ‘포뮬러 원’(F1)에서 우승자를 예측하는 베팅부터 복싱 경기 승리자에 대한 베팅까지 도박 사이트와 다름없는 베팅이 해당 코인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코인이 거래되고 있는 업비트에서는 이 같은 사행성에 대한 주의나 안내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업비트 내에서 제공하는 코인 정보에는 드리프트 코인이 트레이드, 대출·대여, 보상(리워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돼 있을 뿐 베팅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가상자산 설명서인 백서에도 드리프트의 베팅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담겼지만, 거래소는 이를 투자자에 알리지 않았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기준 드리프트의 전체 거래량의 20%가 국내 업비트에서 나왔다.
5개 원화 가상자산 거래소가 모인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닥사)는 지난 7월부터 ‘가상자산 거래지원 모범사례’를 만들어 코인 상장에 대한 자율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범사례에는 가상자산이 테러 자금 조달, 법규 우회 등 위법행위에 사용할 목적으로 설계됐거나 이런 목적으로 주로 이용되거나 이용될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거래지원 부적격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각 거래소는 백서의 주요 내용도 홈페이지에 한글 자료로 제공해야 한다.
업비트 관계자는 “거래 지원하기 전에 드리프트 거래지원이 현행 법규 위반인지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를 모두 마쳤고 위법사항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가상자산 드리프트 전체 사업에서 BET(온라인 베팅)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최근 가상자산 가격 급등으로 거래소들이 상장 코인을 늘리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가상자산 변동성이 낮았던 올해 1~3월 업비트에 상장된 코인 수는 5개에 불과했지만, 비트코인이 급등한 10~11월에는 10개의 코인이 상장했다. 여기에는 캣인어독스월드(MEW), 페페(PEPE), 봉크(BONK) 등 가격 변동성이 높아 투기성이 짙은 밈코인이 다수 포함됐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거래소 상장에 대한 법적 규제 근거가 없는 상황이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코인들의 상장이 잇따르고 있다”며 “코인의 상장, 유통, 공시 등을 다룬 2단계 법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