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12개 도시가 살얼음판 경쟁을 벌이는 과학고 유치전 1단계 예비지정 발표가 2주일 미뤄졌다. 경기도교육청이 과열된 분위기를 의식해 유치 희망지역을 대상으로 계획에 없던 ‘심층 질의’를 추가하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은 술렁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26일 이런 내용의 과학고 신규지정 심사 연장안을 발표했다. 신청서를 토대로 이뤄질 예정이던 기존 예비지정 심사는 △서류심사 △심층 질의 △1단계 예비지정 발표의 절차를 거치게 됐다.
◆ 과학고 어디로?…신규 9곳·전환 3곳 등 12곳 신청
심층 질의는 따로 배점이 주어지지 않고 심사위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된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사전 워크숍에서 서류심사만으로는 세부 평가가 어렵다는 의견을 다수 제기했다”며 “평가 방식을 변경하면서 기한을 맞추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연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청서에 담긴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해 공정한 심사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예비지정 연기로 특목고 지정·운영위 심의는 내년 1월 초, 교육부 장관 동의 요청은 1월 중순, 교육감 지정 및 고시는 3월 중순으로 모두 2주씩 순연된다.
추가된 심층 질의는 비대면 온라인 면접으로 진행된다. 설립·운영·교육 전문가 등 외부 심사위원 7명이 교육지원청, 지자체 담당자들을 상대로 질문하는 식이다. 신규지정 학교가 아닌 기존 고교의 전환교 신청 때는 학교 담당자도 참석한다.
경기지역에 2∼3곳의 과학고를 추가 설립하기 위한 이번 공모에는 신설 9곳, 일반고 전환 3곳 등 총 12곳이 신청했다. 용인, 이천, 광명, 화성, 평택, 고양, 구리, 김포, 시흥이 신규 유치를 신청했고 성남 분당중앙고와 안산 성포고, 부천고 3곳은 일반고에서 과학고로 전환하기를 희망했다. 전환교는 2027년, 신설교는 2030년 개교 예정이다.
공모 방식 변경을 두고는 지자체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한 경기지역 기초자치단체 관계자는 “정확히 몇 개의 과학고를 선정한다는 설명도 없이 면접만 추가돼 당황스럽다”며 “뒤늦은 공모 방식 변경이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항목별 배점에 차등을 두겠다는 취지로 읽힌다”며 “굳이 유불리를 따지기 어려워 보인다”고 답했다.
앞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1360만명의 인구를 지닌 경기도에 경기북과학고(의정부) 1곳만 있다며 권역별 설치를 위한 유치 공모에 나섰다. 임 교육감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서울·부산·경남·인천 등이 2곳씩 과학고를 갖고 있다며 불균형을 지적했고, “(경기도는) 3∼4곳이 적당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후 시·군 단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과열 양상을 띠었다.
이들은 과학고 유치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 지역 교육지원청, 학부모, 시민과 손잡고 간담회나 토론회 등을 이어왔다.
◆ 정치·경제 맞물려 이슈화…“사교육 폭증” 비판
이 과정에서 일부 지자체는 “1000억원을 내겠다”며 이 같은 분위기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예산과 용지, 운영비를 댈 수 있는 부자 도시일수록 유치에 유리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일각에선 과학고 유치가 집값 상승과 도시 이미지 개선으로 이어져 지역 정치인들의 향후 득표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반면 교사노조 등은 불평등 심화와 사교육 폭증, 일반고 황폐화 등을 이유로 과학고 유치에 반대하고 있다. ‘특권교육저지경기공대위’ 등 74개 교육·시민단체는 경기도교육청의 과학고 설립이 역차별을 초래한다며 임 교육감이 주장하는 ‘공평’이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특정 집단에만 적용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기지부와 경기교사노조,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이 참여하고 있다.
도의회에서도 “과학고 신규지정에 앞서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와 공평한 교육권 보장이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달 18일 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의 도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선 “‘갑툭튀’ 정책으로 지자체와 학교를 경쟁으로 몰아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철 도의원(화성6)이 지방선거 공약이나 경기교육백서에도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이 갑자기 튀어나온 이유를 물은 것이다.
이처럼 과학고 유치는 지역 정치·경제 환경과 맞물리면서 폭발력을 지닌 이슈로 등장했다. 배경에는 국내 과학고 입시가 타고난 영재를 선발하기보다 초등학생 때부터 다양한 선행·특화교육 등 사교육을 거쳐 길러진 영재를 뽑는 행사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