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골프채 대신 수불석권을

골프 외교 매몰 안 돼… 트럼프 맞춤 전략 세워야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골프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즐겨 본다는 미 보수매체 폭스뉴스도 윤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과의 회동을 위해 8년 만에 골프채를 꺼내들었다고 보도했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지난여름 이후 7차례나 주말 골프를 즐겼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개인 골프장 12개를 보유한 ‘골프광’ 트럼프 당선인과의 라운딩에 대비한 포석이라고 반박했다.

진의가 무엇이건 ‘골프 외교’에만 매몰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 최근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와 트럼프 당선인을 직접 인터뷰해서 쓴 저서 ‘분노’와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등을 읽고 든 생각이다. ‘공포’에는 한국이 25차례나 등장한다. 대부분 주한미군 철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주장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을 다룬 대목이다. 한·미 FTA는 550쪽 분량 책에서 9차례나 언급됐다.

조병욱 정치부 차장

트럼프 당선인은 이 세 가지 사안에 극도로 집착했다. 그의 첫 대통령 임기 당시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한·미 FTA 파기로 인한 동맹 균열을 우려해 문서 초안을 대통령 책상에서 몰래 치워버렸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동맹국인 한국이 필요하다”며 이를 도왔다.



2017년 11월 경기 평택 미군기지를 찾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빈센트 브룩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기지 건설비의 92%를 한국이 부담했다”며 동맹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전용헬기 ‘마린원’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길에 삼성전자 공장을 내려다보며 “한국은 부자나라다. 방위비 전부를 부담해야 마땅하다”고 고집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베 전 총리는 7000달러짜리 혼마 금장 골프채를 선물했지만, 이것이 나중에 논란이 되자 트럼프 당선인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며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반환하겠다고 했다. 골프 외교로 쌓은 친분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방증이다.

국익 앞에서도 정쟁만 일삼는 국회도 개탄스럽다. 최근 국회 운영위에서 야당은 정부 비난에만 집중했다. 차라리 문재인 전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의 과거 회담과 소통 과정에서 얻은 정보나 교훈을 전달하고 조언했다면 어땠을까. 여야가 ‘2기 트럼프 코스’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데 힘을 합쳤다면 국민의 정치 불신도 조금은 나아졌을 것이다.

영국 BBC 한 기자는 2020년 9월 트럼프 당선인 관련 서적 10여권을 모두 읽고는 그의 인사 철학의 핵심을 ‘충성심’으로 꼽았다. 이는 최근 거론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선의 키워드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처럼 트럼프 당선인의 협상 스타일과 생각을 미리 파악하고, 한·미동맹의 가치를 역설할 구체적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내년 1월 취임 이후로 예상되는 트럼프 당선인과의 첫 정상회담이 틀어지면 뒤늦게 ‘멀리건’(골프에서 실수를 만회하는 기회)을 외쳐도 소용없다. 당선인과의 첫 통화는 일본보다 빠르고 길었다. 조선업 협력 방안까지 논의해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는 연습 라운드에 불과하다. 본게임을 위해 지금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스윙 연습이 아닌 트럼프 당선인 연구다. 골프채 대신 트럼프 책을 집어 들 때 야당에게도 박수받는 대통령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