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기술통 앞세워 ‘메모리 초격차’… 파운드리 실적개선도 올인 [뉴스 투데이]

삼성, 사장단 쇄신 인사

반도체 ‘구원투수’ 전영현 DS부문장
대표이사·메모리사업부장 등도 맡아
‘기술의 삼성’ 회복 이재용 의지 분석
‘메모리 전문가’ 한진만은 사장 승진
파운드리사업부장 맡아 수주 총력전

“역량 입증 시니어 사장들에 도전과제”
베테랑 중용해 조직 안정 전략도 꾀해

삼성전자가 27일 일각에 퍼진 ‘위기설’을 극복하겠다는 이재용 회장의 의지를 고스란히 담은 2025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 경쟁력 회복을 위해 ‘기술통’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미 경영 역량이 입증된 ‘베테랑’ 경영진을 지속 신임하며 신사업 발굴 과제를 맡기는 등 조직 안정을 꾀하는 것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다.

 

‘투톱 체제’로 복원하는 삼성 삼성전자가 27일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을 대표이사로 내정해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과의 2인 대표이사 체제를 복원하는 내용의 인사를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뉴시스

◆‘전영현 체제’로 초격차 회복 나서

 

삼성전자의 쇄신은 위기론의 진원지인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부문에서 두드러졌다. 지난 5월 삼성반도체 ‘구원투수’로 DS부문장에 투입된 전영현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확고한 ‘전영현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 부회장은 DS부문장 외에도 삼성전자 대표이사, 메모리사업부장,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을 추가로 맡았다. 삼성 반도체의 본질인 메모리 경쟁력과 미래 기술 개발 미션을 한 사람에게 몰아준 것이다.

 

직책이 대폭 늘어난 배경엔 ‘기술의 삼성’을 회복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로 읽힌다.

 

전영현 부회장. 연합뉴스

전 부회장은 2014∼2017년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았을 당시 업계 최초 1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급 D램 양산에 돌입하는 등 삼성 메모리의 초격차 기술력을 꽃피운 시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DS부문장에 취임한 지 한 달여 만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팀을 신설한 것도 전 부회장의 ‘기술 중심’ 기조를 보여주는 사례다.

 

전 부회장이 DS부문장과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임한 것은 메모리 사업 1위 지위를 회복하라는 이 회장의 특명으로 읽힌다. 삼성전자는 최근 HBM 등 AI 시대 첨단 메모리 경쟁에서 밀리면서 지난 30여년간 이어온 ‘메모리 초격차’가 흔들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업계에선 야성과 돌파력을 갖춘 전 부회장이 HBM에 전사 역량을 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진만 사장

◆‘운영난’ 파운드리 실적 회복 총력

 

수주 부진과 낮은 가동률로 DS부문 실적의 발목을 잡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 인사는 시장 지배력과 기술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용병술을 썼다.

 

‘메모리 전문가’인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파운드리사업부장을 맡긴 것은 수주 강화를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한 사장은 2022년 말 미주총괄로 부임해 미국 최전선에서 반도체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기술 전문성과 비즈니스 감각을 겸비했고 글로벌 고객 대응 경험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주를 위한 글로벌 빅테크들이 미국에 몰려 있는 만큼 한 사장이 누적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파운드리 실적 개선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김용관 사장

‘전략통’인 김용관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DS부문 직속 사장급 경영전략담당을 신설해 전진 배치한 것도 비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사업부를 겨냥한 인사다. 미래전략실 전략팀, 경영진단팀 등을 거친 김 사장은 2020년부터는 의료기기사업을 맡아 삼성메디슨 대표를 역임해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며 경영 수완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김 사장이 반도체 부문을 현장 밀착 지원해 DS부문 내 전략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운드리사업부에 별도의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 보직을 신설한 것은 수율(양품 생산 비율) 안정화를 노린 행보다. 신임 CTO는 남석우 DS부문 글로벌제조·인프라총괄 제조·기술담당 사장이 맡는다.

이번 인사로 이 회장의 파운드리 투자 의지는 더욱 명확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왕년의 ‘반도체 왕국’ 인텔이 운영난으로 파운드리 분사를 결정해 눈길을 끌었던 지난달 초 필리핀에서 만난 취재진에 “(비메모리 사업을) 분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을 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테랑 중용해 ‘변화 속 안정’ 추구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 대해 “글로벌 리더십과 우수한 경영 역량이 입증된 시니어 사장들에게 브랜드·소비자 경험 혁신 등의 도전과제를 부여해 회사의 중장기 가치 제고에 주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베테랑을 중용해 안정을 꾀했다는 뜻이다.

한종희 부회장

전 부회장이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내정되면서 삼성전자는 ‘투톱’ 중심의 2인 대표이사 체제를 복원했다. 유임된 한종희 대표이사 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부회장과 함께 삼성전자의 양대 부문을 맡아 삼성전자를 이끈다. 한 부회장이 DX부문에 신설한 품질혁신위원회의 장을 겸임한 것은 이 회장의 변함 없는 신임을 보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현호 사업지원TF장 부회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노태문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 등도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 말 MX사업부 서비스비즈팀장에서 물러난 구글 출신 광고·서비스 비즈니스 전문가인 이원진 상담역이 1년 만에 경영 일선으로 복귀한 것도 베테랑 중용의 일환이다. 그는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을 맡아 마케팅과 브랜드, 온라인 비즈를 총괄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첫 여성 사장인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은 브랜드전략위원으로 이동하고,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주도하는 미래사업기획단장엔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 사장이 자리했다. 미래사업지원단장과 SAIT 원장을 맡았던 경계현 사장은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부사장 이하 2025년도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다음 달 중순에는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어 내년 사업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