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나왔는데, 버스가 꼼짝을 못해서 출근하는 데 3시간이나 걸렸어요.”
경기 부천에서 서울 종로구로 출퇴근하는 정모(51)씨는 폭설 예보를 보고 평소보다 이른 오전 6시30분에 집을 나섰지만, 회사에는 9시가 넘어 도착했다. 버스가 밤사이 도로에 쌓인 눈 탓에 움직이지 못하고 30분 넘게 한곳에 멈춰섰기 때문이다. 정씨는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지각했다”며 “출근하는 데 오늘만큼 오래 걸린 적은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7일 서울 지역 첫눈이 폭설 수준으로 내리면서 곳곳에서 ‘출근길 대란’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폭설로 인한 교통혼잡을 예상하고 대중교통으로 몰렸는데, 버스와 지하철이 지연 운행하면서 정류장과 승강장은 승하차 승객들로 뒤엉켜 혼잡한 모습을 보였다. 28일까지 수도권에 많게는 25㎝ 눈이 더 내릴 전망이어서 출퇴근길 혼잡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영등포구 지하철 9호선 당산역 안은 열차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눈이 내려 버스나 자가용 대신 지하철을 타려는 시민들이 몰린 데다 폭설로 열차 전기 공급에 문제가 생겨 운행마저 지연되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9호선뿐 아니라 서울 도심 지하철역에선 승하차가 원활하지 못한 병목현상이 잇따랐다. 열차에 무리하게 탑승하려다가 하차하는 승객들과 엉키기 일쑤였고 여기저기서 “밀지 마세요”, “내리고 타세요”를 외쳤다.
한숨을 쉬며 택시를 타러 몸을 돌리는 시민들도 여럿 보였다. 중구 신당역에서 시청 방면으로 출근하는 이상민(30)씨는 “열차가 꽉 차 3대를 보내고도 몸을 욱여 탔다”고 말했고, 직장인 이모(54)씨는 “지하철은 지연되고, 안은 혼잡하고, 승객들끼리 부딪치는 소리에 아침부터 기운이 빠졌다”고 했다.
한낮에도 많은 눈이 쏟아졌고 추운 날씨에 눈이 얼면서 퇴근길에도 교통혼잡이 이어졌다. 직장인들은 평소보다 퇴근을 서둘렀으나 주요 승강장과 정류장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두꺼운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맨 시민들은 빙판길을 종종걸음으로 오갔다. 서울시는 지하철 일부 노선과 시내버스 출퇴근길 집중배차시간을 30분씩 연장했다.
도로와 하늘길이 통제됐고, 인명피해도 잇따랐다. 강원 홍천군 서석면 서울양양고속도로 서석터널 진입 구간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제네시스 승용차가 25t 덤프트럭을 들이받으며 5중 추돌사고로 이어졌다. 이 사고로 제네시스 차량에 탄 80대 동승자가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기 양평군의 한 농가에서도 제설작업 중 차고지가 무너지면서 80대 남성 1명이 사망했다.
강원 원주시 호저면 만종교차로∼기업도시 방면 도로에선 52중 추돌사고가 발생해 11명이 경상을 입었다. 송파구 가락동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에 설치된 임시 보행로 지붕이 무너져 행인 3명이 다쳤고, 경기 평택의 한 골프연습장에선 철재구조물이 무너져 1명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후 6시 기준 인천공항 71편, 김포공항 34편 등 항공기 150편이 결항되고 70개 항로 89척의 여객선 운항이 멈췄다. 행안부는 이날 오후 2시 중대본 2단계를 가동하고, 대설 위기 경보 수준도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했다.
28일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 많은 양의 눈이 예보돼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날 밤부터 28일 오전까지 서해상에서 다시 눈구름대가 유입되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에 강한 눈이 내릴 전망이다. 예상 적설량은 인천·경기남부가 5~15㎝(많은 곳 25㎝ 이상), 서울·경기북부는 3~8㎝(많은 곳 10㎝ 이상)다.
기온도 큰 폭으로 떨어진다. 28일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5도까지 떨어지고, 29일에는 영하 8도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강한 바람까지 더해져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