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간적인 건축/ 토마스 헤더윅/ 한진이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3만원
“러시아-이보다 재미 없는 건물을 설계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이런 건물 바깥에서 데이트할 마음이 들까? 싱가포르-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여기서 살고 싶을까?”
책장을 넘길수록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서울 아파트 단지나 업무지구라고 해도 믿을 만한 세계 각 도시의 사진이 이어진다. 삭막하고 네모 반듯하고 개성 없는 건물들이 행군하듯 도열해 있다. 한 구석에는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위 같은 촌평을 달아 놓았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미국 뉴욕 허드슨강변의 ‘리틀 아일랜드’, 뉴욕 랜드마크 전망대 ‘베슬’, 구글의 신사옥 베이 뷰 등을 디자인한 영국의 세계적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신간 ‘더 인간적인 건축’을 내놓았다. 100여년간 세계와 인간을 피폐하게 한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는 건축으로 돌아가자는 대담한 주장을 담았다. 서구에 대한 동경과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몰개성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휩쓸듯이 들어온 한국에서 헤더윅의 주장은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먼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지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까사 밀라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르셀로나 고딕지구를 본 경험을 떠올린다. 모두 곡선과 복잡한 형태, 규칙 속에 불규칙한 변주가 깃든 건축물들이다. 헤더윅은 이를 통해 무엇이 ‘더 인간적인 건축’인지 보여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는 순간 밀어닥치는 감정에 대해 헤더윅은 이렇게 묘사한다.
“무한한 어떤 것을 응시하는 느낌이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질감이 살아있는 탑의 규모·높이·반복에 대한 경외심이다. 인간이라는 미미한 존재가 이다지 훌륭한 것을 구상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한 구상을 힘 합쳐 실현해 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아연함이다.”
현대에도 충분히 인간적 건물을 지을 수 있음에도 지난 100여년간 모더니즘이 세계를 휩쓸었다. 헤더윅은 직사각형 박스의 무한 반복인 모더니즘 건물을 ‘따분하다’고 정의한다. 모더니즘 건물은 너무 평평·밋밋하고 직선적·익명적이며 너무 반짝이고 단조롭고 진지하다. 이 ‘비인간적 건물이라는 전염병’은 실제 인간에게 해롭다.
신경과학자 콜린 엘라드는 2012년 사람들이 뉴욕의 따분한 곳과 흥미로운 곳을 지날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분석했다. 연구 참가자들의 피부에서 감정 상태와 관련한 데이터를 측정해보니 따분한 장소에서는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졌다. 반면 따분한 현대 풍경은 정보가 부자연스럽게 적다. 엘라드는 이를 ‘그것, 그래서, 그’ 같은 단어만 들리는 전화통화와 같다고 설명한다. 따분함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늘리고 우울증, 불안, 업무 성과 저하로 이어지며 극단적 신념을 채택할 가능성을 높인다. 한마디로 따분한 건물은 우리를 망가뜨린다는 것이 헤더윅의 주장이다.
인간에게는 ‘경치미’가 필요하다. 인간은 ‘위원회’가 설계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장소성이 있으며 생기와 다채로운 패턴을 갖춘 역동적 건물을 선호한다. 전통적으로 인류는 소박한 집이든 기념비적 건축물이든 아름다움과 장식을 중시했다.
헤더윅은 현대 건축이 잘못된 첫 단추로 근대에 제작자·장인과 건축가가 분리된 것을 든다. 제 손으로 벽돌 하나 쌓아본 적 없는 건축가들은 자신을 예술가라 여겼다. 다른 예술 분야에 모더니즘 열풍이 불자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헤더윅은 모더니즘 사조가 따분한 건물이라는 범지구적 전염병을 일으킨 근원으로 ‘따분함의 신’ 르 코르뷔지에를 소환한다. 전설적 선배 건축가를 조목조목 고발하는 헤더윅의 대범함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일련의 논의를 통해 헤더윅은 독자들에게 “깨어나야 한다. 따분함에서 벗어난 세계를 요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