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딸아이와 기차로 춘천에 있는 친정에 가는 길이었다. 좌석표를 미처 구하지 못해 객차와 객차 사이 연결 통로에 서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공간에 자리 잡은 이는 모두 다섯 명. 육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그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남성, 앳된 얼굴의 남학생, 그리고 딸아이와 나. 우리 다섯 명은 각자 한쪽 구석씩을 차지하고는 서로 말이 없었다. 열차가 출발한 지 십 분쯤 되었을까. 갑자기 육십 대 여성이 딸아이에게 물었다. 너 이 사탕 먹을래? 네! 아이는 내가 무어라 말리기도 전에 신나서 여성 앞으로 갔다. 사탕을 먹는 아이에게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너 교회 다니니? 안 다니는데요?
잘했다. 교회 다닐 필요 없어. 그렇게 끼어든 것은 육십 대 남성이었다. 여성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자 남성은 종교는 무용지물이라며 아인슈타인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곧 교회를 다니는 일에 대해 옥신각신했고 딸아이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사탕 먹기에 열중했으며 나는 그저 그 풍경을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앳된 얼굴의 남학생이 불쑥 내게 다가왔다. 이 열차 왜 안 서요? 상봉역에 내려야 하는데.
내가 이 열차는 상봉역에 정차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알고 보니 잘못 탄 것이었다. 우리가 탄 기차는 지하철이 아니라 ITX 고속철이었다. 주요 경유지 몇 곳에만 설 뿐 춘천까지 급행으로 가는 기차인데 일반 지하철과 같은 선로를 쓰다 보니 어쩌다 잘못 타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일단 다음 정차역에서 내리세요. 그리고 다시 상봉역 쪽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아요. 학생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 고3 수험생이거든요. 지금 논술 시험 보러 가는 길인데. 순간 열차 안이 조용해졌다. 육십 대 남성과 여성도 언쟁을 멈추고 학생을 돌아보았다.
그때 객차 문이 열리며 검표원이 등장했다. 열차표 확인하겠습니다! 그러자 육십 대 여성이 대뜸 나섰다. 다음 역까지 얼마나 남았나요? 저 남학생이 고3인데 열차 잘못 탔대요. 지금 시험 보러 가는 길이래요. 검표원이 학생에게 다가갔다. 부정 승차 벌금에 대한 안내를 하려나 했는데 이번에는 육십 대 남성이 나섰다. 벌금 얼마요? 내가 내겠습니다. 그러자 검표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의 질문에 한꺼번에 대답했다. 5분 이내에 정차합니다. 벌금은 받지 않습니다. 열차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