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베이스의 낮은 소리는 겨울 햇살을 닮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어울리는 낮은 목소리, 더블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 송남현의 솔로 공연이 찾아온다.
재즈인듯, 클래식인 듯, 록인 듯, 뉴에이지인 듯 송남현의 음악에는 경계가 없다. 탱고‧즉흥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그는 여러 장의 ‘재즈 탱고’ 앨범을 내놨다. 장르 구분이 무의미한 밴드 만동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알앤비 가수 유라의 노래를 다수 작곡했다. 동시에 더블베이스 독주를 내세운 희귀한 앨범의 창작자로 자신만의 행보를 이어왔다.
지난해 발매된 그의 솔로 앨범은 치열하게 음악을 끌어안아 온 뮤지션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악기 하나로 빚어낸 생의 결정체다. 깊은 고통에 닿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의 진수를 만날 수 없다. 국내 최초의 더블베이스 솔로 앨범인 송남현의 ‘마침내 나는 신록의 봉우리를 비집고’에는 생의 어두운 통로를 지나며 만난 결전의 장면들이 오롯이 담겼다.
더블베이스 솔로라는 형식도, 정형화되지 않은 곡의 형태도 다소 낯설지만,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만난 장면들과 닮아있기에 생소하지만은 않다. ‘낙인과 족쇄’, ‘두 번째 파도’ 등 곡이 묵직하게 고통을 그리는 한편, ‘신록의 봉우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어떤 선율들은 푸르름을 향해 약동하는 고요하고도 견고한 힘으로 마음을 두드린다.
오는 12월 8일 열리는 송남현의 솔로 공연은 ‘감각과 사유의 운동성 증진을 위한 시리즈’라는 기획 공연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기존의 솔로 곡과 새로 작업한 솔로 곡들을 선보인다. 솔로 2집의 시작점이 될 이 공연은 자신의 감각을 깨워 또 한 번 맨몸으로 음악을, 이야기를 만나야 하는 송남현의 고뇌의 발로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솔로 앨범을 내놓은 후 송남현은 2024 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연주부분 후보에 오르는 등 주목 받았다. 하지만 더블베이스라는 악기의 특성상 솔로 작업에 대중성이 따르지 않았고, 공연을 성사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이런 어려움에 대해 송남현은 “일종의 ‘수련’ 혹은 ‘연마’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송남현은 “그럼에도 제가 솔로 공연을 계속 이어 나가는 이유는 제가 본질적으로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로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 그 안에 투영된 정제되거나 혹은 정제되기 전 저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악기 하나로 망망대해를 건너는 기분일까. 송남현은 조심스럽게 ‘두려움’을 꺼내들었다. 솔로 작업에 대해 그는 “아무래도 하나의 악기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니까, 사실 이 컨셉으로 또 한 번의 앨범 작업을 한다는 게 벅차고 두려웠다”며 “하지만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습작으로 준비해 뒀던 곡들을 다시 꺼내고, 또 연주하면서 ‘한 번은 더 앨범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라는 용기를 얻게 됐다”고 전했다.
슬픔이 푸르름으로 피어난 순간을 음악에 담아 나눴던 뮤지션은 이제 또 한 번 용기를 내어 자기 수련의 결과를 보여주려 한다. 이번 공연은 ‘마침내 우리는 신록의 봉우리를 비집고’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와 함께 낮고 느리게, 또 강인하게 자기 자신을 향할 수 있을까. 그 청청한 용기만으로도 각자의 싸움에 힘을 실어줄 묵직하고도 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