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정부예산안 프리패스 안 돼”… 與 “국정 발목잡기법”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법 통과

기한 내 심사 못하면 정부안 상정
선진화법 도입 당시 만든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 171명 반대 101명

‘소소위’ 심사금액 50조 역대 최대
밀실 논란 속 ‘예산 전쟁’ 점입가경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예산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예산안 자동부의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은 “국가 예산 발목잡기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의석수를 앞세운 야당이 예산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강행처리한 것이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3차 본회의에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272인, 찬성 171인, 반대 101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2일) 내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내년도 예산안과 부수법안의 본회의 자동부의를 막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014년 도입된 ‘국회 선진화법’에 따르면 국회가 매년 11월30일까지 예산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올라간다. 사실상 예산 주도권이 여당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야당은 정부·여당이 해당 제도를 악용해 예산 심사를 미루고 있다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날 표결에 앞서 찬성토론에 나선 임 의원은 “현행 국회법은 정부 예산과 세법 프리패스 제도”라며 “자동부의제 도입 이후 심사 기간 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의결 사례가 전무해 사실상 예결위의 심사권이 형해화됐다”고 강조했다.



반면 반대토론에서 국민의힘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이 강행하는 자동부의제 폐지 개정안은 국회를 다시 10년 전의 깜깜이 속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며 “과반의석을 무기로 국정을 흔들고 민생을 볼모로 민주당의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해당 법안은 재적 의원 272명 중 찬성 171인, 반대 101인으로 가결됐다. 민주당에서는 이소영 의원이 “취지는 공감하지만 성급하다”면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해당 법안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국회 재표결, 폐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일방적 강행 처리한 법안”이라면서 “위헌적 요소를 담고 있어 대통령의 재의요구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자동부의 제도 폐지)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기 앞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브리핑을 열고 “자동부의제도가 폐지되면 예산안 심사를 마쳐야 하는 기간의 제한이 없어지면서 헌법상 기한을 넘길 가능성이 매우 커지게 된다”면서 “정부예산을 책임지는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법률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는 ‘밀실 심사’로 불리는 ‘소소위’(예결위 예산소위에서 합의하지 못한 예산을 결정하는 비공식 협의체)에서 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중 수십조원을 다룰 전망이다. 예산소위에서 여야 대치로 합의하지 못한 쟁점 예산들이 보류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소소위에서 다룰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예산소위 회의록 등에 따르면 감액 심사 단계에서 정부 예비비(4조8000억원)를 비롯해 공적개발원조(ODA)·연구개발(R&D) 관련 예산 수조원 등 50조원에 육박하는 예산 심사가 소소위로 넘어갔다. 여야는 감액 심사를 마치고 증액 심사에 돌입하지만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를 비롯해 고등학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 등 또 다른 쟁점 사안들을 두고 충돌하고 있어 증액안 역시 심사가 줄줄이 보류될 가능성이 높다.

28일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등 조정소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소소위는 법적 근거가 없는 비공식 논의 창구로, 회의록도 남기지 않아 ‘졸속 심사’, ‘깜깜이 심사’란 비판을 받아 왔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기 위한 ‘쪽지 예산’ 역시 소소위 단계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민주당 소속 박정 예결위원장은 “소소위라는 명칭도 맞지 않다”면서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이 있을 때 간사들이 협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으로, 이는 효율적인 회의 진행 방법”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