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예산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예산안 자동부의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은 “국가 예산 발목잡기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의석수를 앞세운 야당이 예산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강행처리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2일) 내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내년도 예산안과 부수법안의 본회의 자동부의를 막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014년 도입된 ‘국회 선진화법’에 따르면 국회가 매년 11월30일까지 예산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올라간다. 사실상 예산 주도권이 여당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야당은 정부·여당이 해당 제도를 악용해 예산 심사를 미루고 있다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날 표결에 앞서 찬성토론에 나선 임 의원은 “현행 국회법은 정부 예산과 세법 프리패스 제도”라며 “자동부의제 도입 이후 심사 기간 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의결 사례가 전무해 사실상 예결위의 심사권이 형해화됐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브리핑을 열고 “자동부의제도가 폐지되면 예산안 심사를 마쳐야 하는 기간의 제한이 없어지면서 헌법상 기한을 넘길 가능성이 매우 커지게 된다”면서 “정부예산을 책임지는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법률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는 ‘밀실 심사’로 불리는 ‘소소위’(예결위 예산소위에서 합의하지 못한 예산을 결정하는 비공식 협의체)에서 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중 수십조원을 다룰 전망이다. 예산소위에서 여야 대치로 합의하지 못한 쟁점 예산들이 보류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소소위에서 다룰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예산소위 회의록 등에 따르면 감액 심사 단계에서 정부 예비비(4조8000억원)를 비롯해 공적개발원조(ODA)·연구개발(R&D) 관련 예산 수조원 등 50조원에 육박하는 예산 심사가 소소위로 넘어갔다. 여야는 감액 심사를 마치고 증액 심사에 돌입하지만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를 비롯해 고등학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 등 또 다른 쟁점 사안들을 두고 충돌하고 있어 증액안 역시 심사가 줄줄이 보류될 가능성이 높다.
소소위는 법적 근거가 없는 비공식 논의 창구로, 회의록도 남기지 않아 ‘졸속 심사’, ‘깜깜이 심사’란 비판을 받아 왔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기 위한 ‘쪽지 예산’ 역시 소소위 단계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민주당 소속 박정 예결위원장은 “소소위라는 명칭도 맞지 않다”면서 “여야 간 첨예한 대립이 있을 때 간사들이 협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으로, 이는 효율적인 회의 진행 방법”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