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1분 전 떠올리는 애달픈 추억들…이영훈의 명곡들로 감동 채운 뮤지컬 ‘광화문연가’

네 번째 시즌 맞아 연출·대본 개선
‘붉은 노을’로 물드는 커튼콜 무대도 환상적

1980년대 엄혹했던 군사 정권 시절, 죽음까지 불사하며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운동권 대학생들의 이야기는 연령대나 직·간접 경험 유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주옥 같은 명곡들이 끊임없이 흐르며 남녀노소 관객 모두에게 감동의 세례를 퍼붓는다.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진 창작 뮤지컬 ‘광화문연가’ 얘기다.

 

이 작품은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옛사랑’,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애수’, ‘빗속에서’ 등 세대를 뛰어넘는 인기 가요를 숱하게 남긴 작곡가 이영훈(1960~2008)의 곡들로 넘버(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영훈은 단짝 가수 이문세(65)를 통해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발라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며, 대한민국 ‘팝 발라드’ 장르 를 개척한 작곡가다.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공연 장면. CJ ENM 제공

2017년 초연 이후 네 번째 시즌을 맞은 ‘광화문연가’는 생을 떠나기 1분 전, ‘기억의 전시관’에서 눈을 뜬 작곡가 ‘명우’가 신적인 존재로 인연을 관장하는 인연술사 ‘월하’의 도움으로 추억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심폐소생술도 소용 없이 임종을 앞둔 그가 눈을 뜬 건 병원 응급실이 아니고 과거 기억들이 저장된 전시관이다. 삶의 출구이자 죽음의 입구인 그곳에서 명우는 월하의 안내를 받아 되돌아가고 싶은 스무 살의 추억부터 더듬는다. 첫사랑 ‘수아’와의 애틋한 사랑, 군에 갔다가 시위 진압 부대로 차출돼 거리에서 수아와 맞서고 이별해야 했던 아픔, 대학 후배이자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아내 ‘시영’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등 명우가 겪고 느낀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현재와 과거의 명우·수아를 비롯해 월하, 시영 등 주요 등장인물이 부르는 이영훈의 노래들은 각자 처한 상황과 자연스레 들어맞아 감동을 증폭시킨다. 첫사랑이나 가족 등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을 지닌 누구나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공연 중간 중간 눈가는 촉촉히 젖고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많다. 이 역시 이영훈이 남기고 간 음악들의 힘이다. 무대 연출은 더욱 입체적으로 개선됐고 이야기꾼 고선웅이 쓴 대본도 다듬어졌다. 배우들의 합도 잘 맞는다. 지난 27일 저녁 관람한 무대에는 윤도현(52)과 차지연(42)이 각각 현재의 명우와 월하 역으로 열연했다. 둘 다 워낙 노래를 잘 하는 데다 연기도 매끄러웠다.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윤도현은 명우 역과 관련해 “음악에 푹 빠져 산 작곡가이자 예술가다. 노래에 빠져 사는 인생엔 리스크(위험)가 많은데, 그걸 잘 표현하고 싶었다”며 “대본 수정을 고심해서 해주신 것 같다. 깔끔하고 간결하고,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흐름 안에서 이영훈 작곡가님 곡이 알맞은 자리에 놓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차지연은 극 전반을 이끄는 안내자 월하의 다채로운 모습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며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수천 년을 살아온 월하가 할머니로 변신해 연기할 때는 그야말로 배꼽을 잡게 했다.

 

초연부터 ‘광화문연가’ 무대에 서고 있는 차지연은 “저의 목표는 단 하나다. 관객들이 죽기 1분 전에 월하 같은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실 만큼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로 비치길 바란다”라고 했다.

명우 역은 윤도현 외에 엄기준과 손호준이, 월하 역은 차지연 외에 김호영과 서은광이 번갈아 연기한다.


커튼콜(부름갈채) 무대는 또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인사를 마치고 들어간 출연진이 ‘붉은 노을’ 반주와 함께 다시 나와 열창하고 관객들은 떼창과 갈채로 화답한다. ‘붉은은 노을’로 물드는 무대에선 스트레스가 고개 내밀 틈이 없다. 후끈한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난 너를 사랑하네 / 이 세상은 너 뿐이야 / 소리쳐 부르지만 /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여러모로 따뜻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공연은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내년 1월 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