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섭의전쟁이야기] 냉전 시대 전쟁의 아이콘, AK-47

냉전 시대, 미국·소련 양대 강대국은 상호 핵 억제 전략과 공포의 균형을 통해 물리적 충돌을 피하며 표면적인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냉전은 결코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었다. 강대국 간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대리전과 국지전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냉전 시대 전쟁을 상징하는 무기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 답은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과 같은 핵무기가 아닌 소총, AK-47이다.

1940년대 말, 소련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설계한 AK-47은 단순함과 내구성을 기조로 탄생했다. 소련은 이 소총을 동맹국과 3세계 국가들에 대량으로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설계 도면을 무상으로 배포해 전 세계적으로 복제와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게 했다.

최근 남부 레바논에서 발견된 헤즈볼라군의 AK-47

AK-47의 전설은 베트남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분당 최대 600발의 속도로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는 AK-47은 베트남 전장에서의 조우전에 적합한 무기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설계와 뛰어난 내구성 덕분에 열악한 정글 환경에서도 고장이 나지 않았으며, 베트콩과 같은 민병대조차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AK-47의 대항마로 개발된 미국의 M16은 복잡한 구조와 초기 설계 결함으로 인해 병사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한 후, AK-47로 무장한 베트콩이 복잡하고 정교한 무기를 가진 미군과 남베트남 정규군을 물리쳤다는 상징성은 이 소총을 전설로 만들었다. 이로써 AK-47은 공산주의와 민족해방운동 세력의 대표 소총이 되었다.



냉전 이후에도 AK-47은 약자가 강자에 맞설 수 있는 무기로서의 위상을 이어갔다. 소련 붕괴의 결정적 계기인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군에 대항하는 무자헤딘의 주력 화기가 되었고, 탈냉전 시기의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에 저항하는 각종 무장 단체들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주요 화기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이라크 전쟁에서는 미군조차 먼지와 모래, 폭염과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AK-47의 성능을 인정하며 실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2억정 이상 생산된 AK-47은 단순한 무기를 넘어 저항, 혁명, 테러, 반군의 상징이 되었다. AK-47의 ‘성공’ 뒤에는 냉전 시대의 정치와 이념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AK-47은 이제 냉전 시기를 넘어 현대까지도 그 위상을 잃지 않고 있는 진정한 아이콘이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