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탄 선물 준다더니 의사단체 이탈로 좌초된 ‘여·의·정協’

여의정협의체 빈손 회의 1일 국회에서 열린 여·의·정 협의체 4차 회의에서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왼쪽부터), 이진우 대학의학회장, 이종태 KAMC(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자리에 앉고 있다. 이날 대한의학회와 KAMC가 협의체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여·의·정 협의체가 20일 만에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   남제현 선임기자

정부와 여당, 의사단체가 만나 의·정 갈등 해법을 모색하던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 3주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대한의학회(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가 어제 여·야·의·정 협의체 4차 회의에서 참여 중단을 선언해서다. 안 그래도 야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불참으로 ‘반쪽짜리’ 오명을 쓴 채 운영되던 협의체에서 두 단체마저 빠져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의·정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형국이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의학회와 의대협회는 정부의 ‘의대 증원 재검토 불가’라는 입장이 변하지 않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최근 경북 국립의대 신설 방침을 밝힌 게 의대 정원을 더 늘리는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임현택 전임 회장이 탄핵당한 이후 전공의 등 강경파들이 주도권을 쥔 의협 비대위의 탈퇴 압박이 주요인이라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의료 시스템 붕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내부 비난을 감수하고 협의체에 참여한다”고 했던 두 단체의 명분도 퇴색하고 말았다. 의료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온건 단체마저 강경파 의사들의 입김에 휘둘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무능력·무기력한 정부·여당도 문제다. 우여곡절 끝에 협의체 가동을 이끌어낸 한 대표는 “협의체 합의가 곧 정책”이라며 힘을 실어줬고, 당 차원에선 “가급적 12월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국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단체의 중도하차를 막지 못해 협의체는 사실상 허울만 남았다. 국무총리,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 참여 등 행정력을 총동원하고서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여권의 정치력, 협상 능력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그동안 대체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정 대화 채널마저 사라지면 사태 장기화가 불 보듯 뻔하다. 시간이 갈수록 의료 공백과 입시 혼란, 의대 교육 부실화 문제는 커지고 이를 막기 위한 비용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것이다. 이제 의협 비대위의 책임이 커졌다. 수능이 끝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대학들이 속속 나오는 마당에 아직도 ‘의대 모집 중지’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의협의 최우선 과제는 정부와의 협상이다. 조속한 사태 해결을 바라는 국민 여망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의협이 실효적인 대안을 갖고 정부와 협상을 이어나가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