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의사단체가 만나 의·정 갈등 해법을 모색하던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 3주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대한의학회(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가 어제 여·야·의·정 협의체 4차 회의에서 참여 중단을 선언해서다. 안 그래도 야당과 대한의사협회(의협)·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불참으로 ‘반쪽짜리’ 오명을 쓴 채 운영되던 협의체에서 두 단체마저 빠져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의·정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형국이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의학회와 의대협회는 정부의 ‘의대 증원 재검토 불가’라는 입장이 변하지 않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최근 경북 국립의대 신설 방침을 밝힌 게 의대 정원을 더 늘리는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임현택 전임 회장이 탄핵당한 이후 전공의 등 강경파들이 주도권을 쥔 의협 비대위의 탈퇴 압박이 주요인이라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의료 시스템 붕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내부 비난을 감수하고 협의체에 참여한다”고 했던 두 단체의 명분도 퇴색하고 말았다. 의료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온건 단체마저 강경파 의사들의 입김에 휘둘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무능력·무기력한 정부·여당도 문제다. 우여곡절 끝에 협의체 가동을 이끌어낸 한 대표는 “협의체 합의가 곧 정책”이라며 힘을 실어줬고, 당 차원에선 “가급적 12월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국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단체의 중도하차를 막지 못해 협의체는 사실상 허울만 남았다. 국무총리,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 참여 등 행정력을 총동원하고서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여권의 정치력, 협상 능력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그동안 대체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정 대화 채널마저 사라지면 사태 장기화가 불 보듯 뻔하다. 시간이 갈수록 의료 공백과 입시 혼란, 의대 교육 부실화 문제는 커지고 이를 막기 위한 비용도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것이다. 이제 의협 비대위의 책임이 커졌다. 수능이 끝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 대학들이 속속 나오는 마당에 아직도 ‘의대 모집 중지’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의협의 최우선 과제는 정부와의 협상이다. 조속한 사태 해결을 바라는 국민 여망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의협이 실효적인 대안을 갖고 정부와 협상을 이어나가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