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6개월간 22대 총선을 앞두고 경북 포항시와 경기 용인시, 부천시에서 미공표 여론조사가 가장 많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2023년 11월∼2024년 4월 선거여론조사 실시신고서 접수현황’을 세계일보가 입수해 1일 종합 분석한 결과다.
해당 기간 경기 지역에서 309개, 서울 137개, 경북 131개, 전남 99개 등 전국에 걸쳐 미공표 여론조사가 상당수 실시됐다. 이 가운데 경북 포항시가 39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용인시와 부천시, 고양시가 각각 36건, 30건, 27건 순으로 나타났다.
미공표 여론조사는 정치권 물밑에서 광범위하게 시장이 형성돼 있다.
‘공급자’인 선거 컨설팅 업체 혹은 여론조사 업체는 미공표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 지형을 미리 파악할 수 있고 예비 후보자들에게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수요자’인 예비 후보자는 여론조사를 빌미로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다. 여의도의 한 정치 컨설팅 업체는 미공표 여론조사에 대해 “출마자 본인의 성명과 경력을 언급하고, 유권자에게 정책을 고민한다는 이미지를 정립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해당 업체는 “선생님께서는 오는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 예정으로 ○○○○○ 차관 출신이며 ○○당 ○○○을 맡고 있는 ○○○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출마한다면 지지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따위 질문으로 미공표 여론조사가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미공표 여론조사는 시시각각 바뀌는 판세를 추정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 선관위 규제를 받지 않는 만큼, 결과 분석이 빨라서다. 특히 미공표 여론조사는 선거 직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그 가치가 급상승한다.
문제는 미공표 여론조사 대부분이 ‘표본’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것이다. 대상자는 유선전화 무작위 추출방식(RDD)으로 선정하거나 여론조사 업체가 자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였다. ‘가중값’ 배율 한도도 없다. 가중값은 특정 성별·연령·지역 등의 응답률이 낮을 때, 인구비율을 적용해 보정하는 방식이다. 가중값 조정이 많아질수록 실제 여론과의 오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공표 여론조사가 늘어나면서 전체적으로 여론조사가 남발돼 응답률이 낮아지는 등 부작용도 작지 않다. 여론조사심의위에 따르면 지난 총선 공표용 여론조사에 사용한 전화번호 규모는 약 2억4135만건에 달했다. 여론조사 평균 응답률은 2020년 총선 9.3%에서 2022년 대선 11.0%, 2022년 지방선거 10.4%, 이번 총선 8.6%로 떨어지고 있다.
연간 안심번호 제공 거부 건수도 2020년 6000건에서 올해 8월 기준 약 190만건으로 증가했다. 통신사가 거주지역·성별·연령대를 인구수 비율에 맞춰 제공하는 안심번호는 여론조사 정확도를 높여왔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잦은 여론조사가 ‘공해’로 인식돼 안심번호도 고갈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은 여론조사에 깊이 포획돼 있다.
현재 양당은 여론조사를 활용해 후보 공천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휴대전화 가상번호(안심번호) 확보 비용으로만 9억5069만원을 썼다고 정치자금회계보고서에서 밝혔다. 국민의힘은 5억9612만원을 안심번호 확보 비용에 썼다. 안심번호 수십만개를 활용해 선거 전략을 짜는 상황이다.
여론조사 업체가 정치권과 공생하며 영향력을 키워간다는 주장도 있다.
민주당은 우리리서치·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티브릿지·조원씨앤아이·윈지코리아컨설팅(윈지)·미디어토마토·지식디자인연구소·리서치DNA·한국인텔리서치에 각각 여론조사 대금을 지급했다고 신고했다.
국민의힘과 판세 조사 계약을 맺은 여의도리서치는 21대 총선 당시 14억9141만원 계약을 맺은 데 이어 22대 총선에도 15억원대 계약을 맺었다.
명태균씨가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는 총 7건, 9549만원어치 계약을 따냈는데 이 중 4건은 국민의힘, 3건은 민주당 지자체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