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싸우면 챗GPT에 물어봐요”… 일상 깊이 파고든 ‘디지털 동반자’

챗GPT 출시 2주년

학생들, 교사 대신 고민 상담 늘어
청소년 AI의존도 갈수록 심화 우려
금융·의료·문화 등 전방위 확산세

챗봇 형태서 ‘개인 비서’로 진화
인간의 감정 이해하고 소통 가능

세계 기업·기관 75%가 AI 사용
산업 전반서 활용 갈수록 많아져

“사람과 더 닮아질수록 의존도 커”
과도한 감정적 유대로 잇단 사고

“오늘 학교에서 제일 친한 친구와 싸워서 속상해. 어떻게 해야 할까?”

 

경기 시흥 소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A(10)양은 하교 후 부모님 핸드폰을 열어 ‘챗GPT’를 켰다. A양의 고민에 챗GPT는 “친구의 기분이 상했다는 걸 깨닫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배려심이 느껴진다”며 “먼저 솔직하게 사과하고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라고 조언했다.

 

대표적인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챗GPT가 출시 2주년을 맞으면서 AI 기술에 친숙한 청소년 사이에서 인간관계의 해답을 찾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AI가 일상의 편의를 돕는 것을 넘어 청소년의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AI기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한 현실에서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B씨는 “요즘 학생들은 친구와 다투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부모님이나 교사보다 챗GPT에 먼저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청소년 사이에선 챗GPT가 일종의 디지털 상담사가 된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챗GPT로 알아보는 친구와 화해하는 법’, ‘챗GPT 인간관계 상담’ 등의 콘텐츠가 높은 조회 수를 얻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챗GPT가 13세 미만 가입자를 제한하고 있지만, 이미 아이들은 여러 편법으로 챗GPT를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며 “학교 밖에서의 사용은 다 막을 수 없으니 올바른 사용 방법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수요에 부응하듯 챗GPT의 대화 능력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올해 5월 공개된 ‘GPT-4o(포오)’ 버전은 사용자의 얼굴 표정을 읽고 감정 상태까지 파악한다. 이전의 대화 내용을 기억하고 개인에 맞춘 조언을 제공하기도 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어드릴 수 있을까요?”라며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하고, 이용자가 ‘셀카’를 올리면 감정을 분석해 “당신 기분이 정말 좋아보이네요”라고 표현하는 수준에 올랐다.

 

한층 더 사람 같아진 생성형 AI는 우리의 일상 곳곳을 빠르게 침투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발표한 ‘AI의 비즈니스 기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과 기관의 75%가 생성형 AI를 활용 중이다. 1년 전(55%)보다 20%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지난달 29일 정식 개방 전인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확장구역에서 서비스 로봇 ‘GPT플래티’가 관계자들 사이로 이동하고 있다. GPT플래티는 챗GPT가 탑재돼 시민들과 자연스러운 음성 대화가 가능하다. 인천공항=뉴스1

업계에서 생성형 AI는 챗봇 형태에서 ‘AI 에이전트’로 발전 중이라고 보고 있다.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사용자와 대화하거나 글, 그림 등을 생성해 주는 챗봇에서 멈추지 않고, 생성형 AI가 대신 기차표를 예매하고 레스토랑을 예약해 주는 등 업무나 일상생활에서 사용자가 할 일을 대신하는 개인비서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AI 에이전트가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비율이 올해 0%에서 출발해 2028년엔 15%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 시장은 지난해 58억2000만달러(약 8조원)에서 2030년 705억3000만달러(약 98조원)로 성장할 것이라는 시장조사기업 그랜드뷰리서치의 예측도 있다.

 

기술 진화에 발맞춰 은행권은 AI 은행원·점포 등 서비스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은 ‘AI 금융비서 서비스’를 준비 중으로 영상합성 엔진, 머신러닝 등을 바탕으로 계좌 이체, 입·출금 내역 조회부터 금융상품 소개 및 필요 서류 안내 등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술 개발에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특화된 서비스를 통해 경쟁력 확보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8월 금융위원회의 규제 완화로 AI 활용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의료계에서는 AI가 환자·의료진과 직접 소통하며 진료를 돕는다. 환자들에겐 본인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건강관리를 제공하고, 의료진에겐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90%가 넘는 정확도로 진단 방향을 제시한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AI가 환자의 증상과 심리 상태를 고려해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고령자나 만성질환자의 경우, AI 챗봇이 24시간 건강상담사 역할을 하면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문화예술계선 AI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창작 방식을 열어가고 있다. 웹툰 작가들은 AI로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음악가들은 AI와 함께 작곡한다.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작가 7명이 챗GPT와 협업해 쓴 소설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 2월에는 무료 생성형 AI 프로그램으로만 제작한 3분짜리 단편영화가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AI와의 소통이 일상화되면서 기대와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올해 5월 공개된 GPT-4o는 한층 강화된 감정 교류 능력으로 주목받았지만, 개발사인 오픈AI조차 “사용자가 AI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인간과의 상호작용 필요성을 줄일 수 있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해외에서는 AI 챗봇과의 과도한 감정적 유대가 비극적 결과로 이어진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한 20대가 챗봇과 5000개 이상의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AI의 부추김에 암살 공격을 시도했고, 미국에서는 챗봇에 자살을 상담한 10대가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두 사례 모두 이름과 얼굴을 가진 ‘의인화된 챗봇’을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음성으로 AI와 대화할 때 사용자들의 감정이입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AI는 GPT-4o 테스트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오늘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야”와 같은 말을 하며 챗봇을 의인화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발견했다고 밝혔다.

 

AI가 사람과 더 닮아질수록 이용자의 의존도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AI와의 관계에 몰입한 사용자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았음에도 이를 지나치게 신뢰할 수 있다고 오픈AI는 경고했다.

 

박 교수는 “아이들이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인격체로 인식하는 순간 문제가 커진다”며 “단순히 AI에 중독되는 게 아니라, AI가 사라지면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사람과 떨어지게 됐다고 생각하고 분리불안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리터러시 관련 비영리단체 커먼 센스 미디어의 로비 토니 연구원은 “10대들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복잡한 역학작용 없이 (자기 말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AI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실제 (인간)관계에 필요한 사회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고, 인위적이지만 편안한 역학관계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고 유로뉴스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