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가 불법 정치자금 몰랐다면…대법 “기부자도 처벌 못 해”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사무실 임차 비용을 대납받는 사실을 몰랐다면 기부한 사람도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흥수 전 인천 동구청장과 오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최근 확정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뉴시스

오씨는 2017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인천에 있는 한 건물을 이 전 청장 선거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이 전 청장 명의로 계약하고, 12회에 걸쳐 월세와 관리비 등으로 1400만원가량을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오씨가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했고 이 전 구청장도 오씨의 임대료 지급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보고, 두 사람을 2019년 재판에 넘겼다.

 

이 전 구청장은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가 사무실을 빌리는 과정에 관여했거나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 기부자인 오씨에 대한 판단은 엇갈렸다. 오씨는 재판에서 본인이 시의원이나 구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사무실을 계약했지만 출마가 무산된다면 이 전 청장을 비롯한 다른 후보자에게 대가를 받고 양도할 생각으로 이 같은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은 오씨 주장대로 사무실을 양도하려 했다면 임대인 동의를 얻어 임차인 지위를 승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오씨가 실제 출마를 준비했던 객관적 증거도 부재한다며 그에게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2심은 그러나 정치자금법상 기부한 사람과 기부받은 사람은 대향범(對向犯) 관계이기 때문에 이 전 청장이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오씨도 처벌할 수 없다고 보고 오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정치자금법상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어서 오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처분할 수 없다고도 판시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