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10일 새 희비 갈린 판결 유죄 비판·무죄 환영, 반응도 극과 극 법과 원칙 지킨 판결만이 권위 지켜 법관 제 역할 해야 사회 혼란 최소화
추상같은 사법 판결의 힘을 새삼 느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새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달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1심 형량은 뜻밖이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은 국회의원 당선을 무효로 하는 형량이다. 형이 확정되면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더 셀 것으로 예상한 지난주 위증교사 사건 1심의 무죄 선고도 뜻밖이었다.
유력 정치인의 정치생명이 판결로 판가름나는 건 불행한 일이다.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벽을 넘어섰더라면 대통령이 되었을 정치인이다. 사법리스크만 없다면 다음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이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대적할 수 없을 만큼 지지층이 확고하다. 그의 정치생명과 대한민국 정치 판도가 합의부 재판부 판사 3명의 판단에 달린 것이다.
지난달 헌법재판소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사 첫 변론 광경도 뜻밖이었다. 재판관들은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과 헌법재판관을 선출하지 않은 국회를 질책했다. “국회는 왜 방통위원을 추천하지 않는 건가”, “국회의 임무를 제대로 했나”, “국회의 뜻은 헌재가 일하지 말라는 것인가”…. 어조는 절제됐으나 수위는 셌다. 탄핵소추위원으로서 참석해 설명하는 민주당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향해서는 “민주당에 질문하는 게 아니다. 국회에 질문하는 것”이라고 면박했다. 천하의 정청래 위원장이 아닌가.
추상같은 판결을 받아들이는 민주당 측 태도는 딴판으로 다르다. 공직선거법 사건 유죄 선고에 “윤석열 정권의 대선 후보 죽이기, 정적 말살 시도에 (법원이) 판결로 화답한 것”(조승래 수석대변인), “법치가 질식하고 사법 정의가 무너진 날”(박찬대 원내대표), “사법부를 이용한 야당 죽이기”(김병기 최고위원)라고 반발했다. 이 대표도 “현실의 법정은 아직 두 번 더 남아있고 민심과 역사의 법정은 영원하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10일 뒤에는 “진실과 정의를 되찾아 준 재판부”에 감사하게 될 줄 몰랐을 터이다.
사법부 판결은 존중되어야만 한다. 유불리·유무죄를 떠나 그래야 한다. 물론 법관들이 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법이라고 한다. 법조문의 틀 내에서도 법관에게 주어진 재량이 크다는 뜻이다. 사실관계들을 종합해 이상적인 무결점의 진실을 찾아낼 수나 있는 것일까. 그렇더라도 사법부는 분쟁의 종국 결정자라서 마땅히 권위를 가져야 한다. 유죄 선고라서 반발하고 무죄 선고라서 환호하는 건 법을 제멋대로 해석한 반응이다. 재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 탄핵 운운하는 건 선수가 심판을 갈아치우겠다는 격이다.
그런 사법부 권위를 스스로 훼손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검찰의 칼을 빌려 사법 농단 의혹으로 판사 14명을 재판에 넘기고 66명을 징계 대상에 올렸다. 기소 14명 중 유죄 선고가 난 사례는 3명뿐이다. 방대한 수사기록으로 ‘트럭 기소’라는 말을 낳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심서 47개 혐의 모두가 무죄선고 났다. 사법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도입된 법원장 추천제, 고법부장 폐지 등으로 얼마나 많은 고위 법관이 법원을 떠났던가. ‘적폐판사’라던 그들은 지금 각 대형로펌에 흩어져 유능한 변호사로 활약 중이다.
판사들은 어땠는가. 적지 않은 이들이 보신주의로 일관했다. 내용이 민감하거나 복잡한 사건 판단은 미룬 채 쉬운 사건만 골라, 그것도 1주일에 3건만 판결문을 썼다고 하지 않은가. 사건이 쌓여 재판이 길어지니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래선 권위가 설 수 없다.
판사들만이라도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법과 원칙대로 판결해 권위를 지켜야 한다. 판사도 한 인간으로서 이 대표 사건을 처리하기가 부담스럽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해 줘야 한다. 그게 사회적 혼란을 줄이는 길이다. 위증교사 1년 1개월, 선거법 2년 2개월의 1심을 통해 사실관계가 충분히 다뤄진 만큼 항소심이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다. 이 대표 측으로서도 ‘1승 1패’의 선고라서 항소심 재판을 지연할 명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