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소나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피해 규모를 키운 건 물기를 머금어 무거운 ‘습설(濕雪)’ 때문이다. 통상 습설은 100㎡(약 30평)에 50㎝가 쌓이면 무게가 5t이나 될 정도로 무겁다. 이 때문에 잎이 단단하고 손을 벌린 형태의 가지로 이뤄진 소나무가 부러지는 피해가 많았던 것. 가로수로 많이 활용되는 메타세쿼이아의 경우 잎이 약한 편이어서 습설과 함께 떨어지기 쉽지만 소나무는 눈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하다가 ‘골절상’을 입게 된다.
2일 경기 양주시에 위치한 A골프장을 찾은 50대 이모씨는 곳곳에 쓰러진 소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른 서너명이 매달려도 끄덕없을 정도로 굵은 소나무 가지들이 꺽어지고 경사면에 서 있던 소나무는 아예 허리가 부러졌다.
이씨는 “골프장 거의 매 홀 마다 소나무가 통째로 쓰러지거나 가지가 꺾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어림잡아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피해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나무 가지에 쌓인 눈을 털어줬으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경기 용인시 소재 B골프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소 아름다운 조경으로 유명한 데 폭설로 소나무 수십 그루가 피해를 입었다. 폭설로 지난 주 폐장했던 이 골프장을 이날 찾은 내장객들은 부러지고 꺾인 나무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골프장 관계자는 “대부분의 골프장에는 상록수인 소나무를 많이 심는데 늦가을에 소나무 가지 치기를 하지 않은 골프장들이 대부분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국가가 보호하는 천연기념물도 기습적인 폭설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담장 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재동 백송’ 가지가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다. 재동 백송은 길이가 3∼8m에 이르는 가지 5곳이 찢어지거나 꺾였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재동 백송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총리 공관 안에 있는 천연기념물 ‘서울 삼청동 측백나무’도 길이 4∼8m에 달하는 가지 6곳이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달 27∼28일 내린 눈으로 ‘서울 재동 백송’을 비롯해 천연기념물 총 3건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하루 밤 사이에 수십cm에 달하는 눈이 쏟아진데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탓에 보호수들도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나무가 강풍과 폭설에 잘 견딜 수 있도록 평소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눈이 많이 쌓이지 않도록 눈 털기를 해줘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