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고 했다. 야당의 감액 예산안 상정 시도와 고위공무원에 대한 잇따른 탄핵 추진을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 채해병 국정조사 등에 궁지에 몰리자 나온 오판이란 평가도 나온다.
최근 여당이 채해병 국정조사 특위 위원 명단을 제출하면서 국회는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채해병 국정조사를 개시할 예정이다. 당장 10일에는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 또한 예고돼 있는데 여당 내 친한계(친한동훈계)에서 기류 변화가 감지되는 상황이다. 야당은 김 여사 특검법 외에 상설특검 가동을 위한 채비도 마친 상태다. 최근 여당 추천 몫 배제를 골자로 한 상설특검 규칙 개정안을 처리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이런 사정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국회의 예산갈등과 야당의 고위공무원 탄핵 추진만을 그 명분으로 들었을 뿐이다.
실제 국회는 4일 본회의를 열고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야당은 전날 감액 예산안 상정을 시도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동을 걸면서 10일까지 여야까지 추가 협상을 요구한 터였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대구에서 현장 최고위 회의를 열며 ‘지역사랑상품 예산 2조원, 민생돌봄의 마중물로 쓰겠다’는 현수막을 배경으로 걸었다”며 “불과 나흘 전 헌정 사상 초유의 일방적 날치기로 민생예산과 R&D(연구개발)예산, 국민안전예산을 대거 삭감 처리해놓고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어디서 마련하겠다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예산 파행의 책임이 민주당에 있는 만큼 협상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태도다. 추 원내대표는 “날치기 감액 예산안 사과와 철회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추가 협상도 없다”고 선을 그었고, 장동혁 최고위원은 MBC 라디오에서 “감액안이 정말 제대로 된 예산안이라면 어제 본회의에 올려 표결했어야 한다. 저희는 표결하자고 주장했다”고 했다.
야당은 정부·여당에 증액안부터 내놔야 협상이 가능하다고 맞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감액안에 대해 ‘경제 리스크 가중’ 우려를 내놓는 정부·여당을 향해 “거짓말 아니면 남 탓밖에 할 줄 모르는 정말 한심한 정부”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총 감액 규모 4조1000억원은 정부 예산안 총지출의 0.6%에 불과하고 그나마 절반 이상이 사용처가 지정되지 않은 예비비 2조4000억원이다. 예비비나 대통령실·검찰 특수활동비가 감액됐다고 국정 마비될 일도 없고 나머지 감액된 예산도 민생, 기업, 경제리스크와 관련이 없다”며 “정부가 민생경제를 진심으로 걱정했다면 애초부터 예산안을 그렇게 편성했어야 옳지 않겠나”라고 꼬집었다.
박 원내대표는 여당의 사과 요구에 대해서도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어야 한다”며 “초부자 감세로 나라살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그걸 덮기 위해 민생사업예산을 뭉터기로 감액 편성한 게 누군데 지금 와서 증액 권한 없는 국회와 야당 탓을 해서야 되겠나”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민생과 경제 회생을 위한 증액 예산안부터 갖고 오라”고 했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야당 주도로 검사 탄핵에 반발하는 검사들을 겨냥한 감사원 감사요구안이 처리됐다. 여야는 이 자리에서 최근 검사들의 집단행동의 적절성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검사들의 성명 발표 등 움직임에 대해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 명백하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정치 탄압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야당이 계속 탄핵을 추진하다 보니 검사들이 거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데, 정치적 집회나 정치적 의견 표명이라 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야당의 잇따른 검사 탄핵 추진에 대해서도 “특정 사건 처리에 대해 민주당 입맛대로 처리를 안 했다고 성실의무 위반이라며 주장하는데, 특정 사건에 대한 기소 여부를 민주당이 정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탄핵이 정치적 탄압이기 때문에 검사들이 정당하게 의견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이번 검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이번 같은 경우는 도를 넘었다. 국가공무원법을 정면 위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민 의원도 “(국감 중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에 대해 전혀 감찰하거나 징계할 의사가 없었다. 방조했고 오히려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 이건태 의원은 국민 여론을 들어 이번 감사 요구가 정당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무혐의 처분을 내린 데 대해서는 이프로스에 글 하나 올리지 않던 검사들이 국회가 그 책임을 물어 탄핵한다니깐 공분하는 걸 보고, 국민들이 공분 중”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