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긴박했던 국회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특히 과거 계엄령을 겪은 정치인들이 경찰 출입 통제를 피해 능숙하게 월담하거나 계엄 해제 뒤에도 자리를 지키는 모습 등이 관심을 끈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10시23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예고 없이 긴급 담화를 열고 “야당의 탄핵 시도로 행정부가 마비됐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30분여 뒤인 오후 10시50분 국회의 모든 출입구가 폐쇄됐고 국회의원 출입이 제한됐다. 이후 일부 의원과 보좌진에게만 제한적으로 출입이 허가됐다.
계엄 선포 사실을 인지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단체대화방을 통해 “국회로 모여야 한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이후 오후 11시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담을 넘어 국회 경내 진입에 성공했다. 국회 담장 높이는 1m 남짓이다. 이 소식이 순식간에 퍼지며 의원들은 “넘기에는 어느 담이 좋은가” “2문과 3문 사이에 경찰병력 경계가 허술하다” 등 정보를 공유했다고 한다.
오후 11시5분쯤 우원식 국회의장도 월담에 성공했다. 그는 계엄 선포 당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만찬회동 후 공관에서 휴식하다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에게 유선으로 보고받은 뒤 한남동 공관에서 국회로 출발했다고 한다. 오후 10시56분쯤 국회에 도착했으나 경찰 차벽에 가로막혀 경내로 들어오지 못했고, 결국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왔다. 1957년생인 우 의장은 올해 67세다.
올해 59세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월담하는 모습도 실시간 생중계됐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했고, 하차 직후 곧바로 출입문 쪽이 아닌 담장을 넘어 의원회관 내부까지 빠르게 도착했다. 당시 이 모습을 200만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지켜봤는데, 댓글창에는 “역시 ‘경력직’이라 판단이 빠르다” 등의 응원이 쏟아졌다.
본청에 도착한 우 의장은 자정쯤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계엄 선포에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조치하겠다”며 “국민 여러분은 국회를 믿고 차분히 상황을 주시해달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어 오전 12시30분쯤 본회의장 의장석에 올라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위한 본회의 개의를 준비했다. 당시 개의 준비 동안 국회 본청에는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진입해 이를 막아서는 의원 보좌진들과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은 “당장 개의해서 계엄해제 요구안을 상정하라”며 재촉했지만, 우 의장은 “절차적 오류 없이 의결해야 한다. 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다”면서 자제를 요청했다. 우 의장은 안건이 올라오자 오전 12시47분 본회의를 개의했다. 그는 “밖의 상황을 잘 안다. 이런 사태엔 절차를 잘못하면 안 된다. 비상한 각오로 다 바쳐서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은 오전 1시쯤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우 의장은 국회의 해제 요구에 따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비상계엄이 공식 해제될 때까지 본회의장 문을 닫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공식 해제 때까지 본회의를 계속 열어두기로 했고, 해제 선포가 나오지 않자 오전 4시 긴급 담화를 통해 대통령에 계엄 해제를 거듭 요구했다.
새벽까지 본회의장에서 밤샘 대기하는 의원들 모습도 포착됐다. 특히 올해 82세인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입을 벌린 채 지쳐 잠든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잡혔는데, ‘83세 박지원옹’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온라인상에서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에 박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고약한 사진 기자님. 자는 모습을ㅋㅋ 제 나이는 83세가 아니고 82세 골드 보이입니다”라며 재치 있게 나이를 정정했다.
1942년생인 박 의원은 1950년 6·25 전쟁부터 1961년 5·16 군사정변, 1972년 유신 선포, 1979년 10·26 사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내려진 17차례의 계엄령을 모두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