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오렌지 농장 지대였던 실리콘밸리에 인재가 모여 창업하니 혁신이 이뤄지면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의 메카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시 서니베일에 있는 플러그앤드플레이(Plug and Play·PNP) 본사에서 기자가 만난 조용준 한국 대표는 국내 비수도권 1호 유니콘기업 탄생 조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2006년 설립한 PNP는 전 세계 60개 지사를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 육성 기관이자 벤처투자사다.
회사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벽면에는 이곳을 거쳐 간 스타트업 이름이 적힌 간판이 빼곡히 걸려있다. 구글과 우버, 스카이프, 페이팔, 드롭박스 등 낯익은 유니콘기업도 눈에 띄었다. “연간 6000여개의 스타트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15개의 산업 특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는 조 대표의 설명을 듣고 왜 이 회사가 ‘실리콘밸리 3대 창업지원 기관’으로 성장했는지를 실감했다. 조 대표는 “한국은 글로벌 제조 기업이 많아 지역 산업구조 특성에 맞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실리콘밸리와 협력한다면 더 많은 유니콘이 탄생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11월 기준 전 세계 유니콘기업(1363개사) 가운데 한국은 14개사를 보유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의 저력을 앞세워 그 숫자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지만 올해 탄생한 유니콘은 없다. 지정된 국내 유니콘기업의 공통점은 대부분 기업이 IT, 콘텐츠, 소프트웨어를 접목한 사업화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벤처투자사도 90% 이상이 수도권에 있다. 2020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집행한 벤처투자금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이는 아직 비수도권에서 유니콘기업을 육성하는 데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수도권 유니콘기업의 경우 수도권과는 달리 일반 제조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탓에 사업화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 물론 비수도권에서도 IT나 소프트웨어 분야의 사업화를 할 수 있다. 최근 대구의 스타트업 엠에이아이티(MaiT)가 의료용 소프트웨어 하나로 PNP로부터 5만달러 투자계약을 체결한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하지만 기업이 일정 수준의 성장세를 지나면 투자, 인력, 네트워크 등의 이유로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전국 지자체는 지방 펀드, 콘텐츠 관련 기관 설립, 기반 조성 등을 바탕으로 지방 유니콘기업 육성을 독려하고 있다. 정부도 7월 ‘초격차 AI 스타트업 레벨업 전략’을 발표하고 2027년까지 AI 관련 유니콘기업 3개사를 육성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가적 혁신 촉진과 신산업 육성, 고용 확대 등에 이바지하는 유니콘 육성을 위해 스타트업과 수요기업의 매칭, 금융지원 등의 정책적 지원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2025년 새해 스타트업이 활발해지는 여건을 조성해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K유니콘’이 비수도권에서도 다수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