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고위 외교당국자가 동맹국인 한국 정상의 결정에 이 같은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캠벨 부장관은 4일(현지시간) 아스펜전략포럼이 개최한 포럼에서 한국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심한 오판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계엄법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한국에서 깊고 부정적인 울림이 있다”고 말했다. 캠벨 부장관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것이 매우 불법적인(illegitimate) 과정임을 분명히 할 준비가 돼 있었다”며 “우리가 여기서 일부 위안과 확신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불법’이라는 표현을 자신의 판단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판단을 간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계엄과 관련해 부정적 인식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동맹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들의 국내정치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인 만큼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강력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윤 대통령이 촉발한 정치 혼란이 한·미·일 3자 협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미국과 일본 당국자들은 윤 대통령이 왜 그런 충격적인 권위주의적 움직임을 보였는지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를 밀어붙여 한·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한·미·일 협력 구도 강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계엄령 사태 이전에도 한·미·일 협력은 트럼프 당선인의 복귀, 일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의 재선출 및 소수 여당 체제 등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었지만, 이번 사태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은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외교부에 있을 때 겪어 본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비롯해 미국 사회는 대한민국에 대해 ‘미국이 민주주의를 심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 국가’라고 생각하더라”며 “동맹으로서 한국은 그러한 신뢰성을 높게 평가받아왔는데, 비상계엄 사태로 현 정부에 대한 의구심이 너무나 높아진 것이 실감됐다”고 말했다.
CNN은 북·중·러 지도자들이 한국 상황을 주시하면서 미국의 주요 세력 기반이 약화할 가능성에 주목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