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안보·경제 지킬 방첩태세 취약하다

中으로 빼돌리는 산업기술 급증
간첩죄 北으로 한정돼 처벌 못해
국가 흥망 좌우해도 경계심 부족
법안 개정·전문 방첩기관 설립을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어요? 평화와 번영 속에 한국이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던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 떠돌던 말이다. 정보화와 세계화의 여파로 해외에서도 온라인으로 상대방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지금, 굳이 간첩을 보내서 정부를 수집한다는 것이 잘 실감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간첩은 매춘에 이어 역사상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으로 불린다. 돌도끼를 들고 싸우던 원시시대에서조차 이웃 부락의 취약점을 찾던 간첩이 존재했다. 현대에서도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는 손자병법조차 간첩을 활용하는 ‘용간(用間)’을 당당한 전략의 하나로 제시한다. 적과 싸워서 지지 않으려면 적을 알아야 하고, 적을 아는 데 필수적인 간첩은 너무도 당연한 국가의 임무라는 것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

그래서 역사 속에서는 수많은 간첩이 활약하며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자국에 승리를 안겨 왔다. 2차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다주었던 이중 스파이 아서 오언스, 냉전 초기 소련을 위해 활동하며 6·25전쟁 정보까지도 전달했던 킴 필비, 시리아의 국방차관까지 올라가며 이스라엘의 승리를 가져다주었던 엘리 코헨, 공산주의 체제에 반발하여 소련의 첩보활동을 모조리 제공했던 드미트리 폴랴코프 장군 등 간첩들은 역사를 바꿔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간첩의 존재가 당연한 것이라면 간첩을 막는 것도 국가의 당연한 과제다. 통상 방첩이라고 불리는 간첩 방지활동은 적의 공격을 정탐단계에서부터 막을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국가안보 활동이 된다. 그러나 방첩은 근본적으로 자국의 민간영역에 숨어든 간첩을 찾기 때문에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특히 간첩의 주체가 북한에 국한되지 않으며, 대상도 국방과 군사를 넘어 다양해지고 있다. 간첩은 적국만이 하는 것이 아니며 외국, 심지어 동맹 간에도 간첩이 있을 수 있다. 미 해군 정보분석관인 로버트 킴은 북한 잠수함 동향 등의 정보를 우리 정부로 건넸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에 체포되어 복역했다. 동맹이건 아니건 외국의 간첩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물리적 전쟁보다 ‘경제전쟁’이 수단이 되는 가운데, 한 나라가 보유한 첨단산업의 기술과 노하우는 국가 차원에서 얻어내고자 하는 핵심정보이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업기술 유출 적발이 96건으로, 중국으로의 기술유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이 우위에 있는 반도체 분야가 최우선 타깃이고,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생명공학 등 한국의 번영과 성장 동력이 모두 대상이 되고 있다.

이렇듯 국가의 흥망이 달린 위협인 간첩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세는 취약하다. 특히 법과 제도의 미비가 큰 문제다. 대표적으로 형법의 간첩죄부터 적국을 위하여 간첩 행위를 한 자만을 처벌한다고 규정하여, 막상 북한 이외의 외국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한다. 또한 국가첨단전략기술을 외국을 위해 취득 유출하는 행위도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의 처벌 대상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북한 이외에 외국인의 간첩 행위에 대한 처벌이 어렵다. 여기에 올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면서 방첩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우려가 커진다. 간첩과 방첩 임무를 동시에 해선 안 된다는 정치적 고려를 이해하더라도, 별도의 전문방첩기관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간첩을 막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와중에 우리 군사기지를 수백 회나 넘게 촬영하고 심지어 우리 해군기지나 국정원을 드론으로 불법촬영해온 중국인 ‘유학생’들이 검거됐다. 말이 유학생이지 실제로는 정보 분야 종사자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들을 처벌할 만한 법규가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경계심이 부족하다. 최근 외국인들과 관련된 간첩 행위는 단순히 미·중 전략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노력과 번영을 약탈해가려는 경제전쟁의 일환이다. 국회는 발 빠르게 관련 입법을 정리하고 정부는 전문적인 방첩기관의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안보와 경제가 하나가 된 시대를 맞아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