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 만연’ 일본, 한국 시민 계엄 저항에 “우리는 가능할까”

“인간 사슬이 되어 계엄군에 저항하는 모습에 압도됐다. 우리는 나가타쵸로 달려갈 수 있을까.”

 

요코하마시에 거주하는 50대 일본인 여성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나가타쵸는 국회 의사당, 총리 관저가 소재한 도쿄 행정구역으로 일본 정계를 통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이 여성이 글을 올린 시점은 지난 4일 오전. 하루 전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수많은 한국 시민들이 계엄에 따른 국회 봉쇄, 무장군인 투입에 저항하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지켜 본 뒤에 올린 소감이다. 아사히신문은 비상계엄 선포, 국회의 해제 요구 등이 “일본의 헌법에는 같은 규정이 없고 정치구조도 (한국과) 크게 다르다”며 “그런데도 (일본인) 자신의 삶과 겹치며 자문자답하는 이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 뉴시스

아사히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BTS 팬으로 한국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해 왔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을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탄압한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도 읽었다. 그는 “행동하지 못하면 역사의 스위치를 멈출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가미지마 히로카즈씨는 3일 늦은 밤부터 4일 새벽까지 이어진 서울 여의도의 풍경을 본 뒤 “만약 일본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이란 의문을 떠올렸다. 일본 선거에서 유언비어나 비방중상이 난무하는 걸 지켜보며 ‘민주주의가 조금씩 깨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던 터라 이런 상상은 현실감이 있었다. 가미지마씨는 한국 국회의원 190명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두고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일본에서는 몸을 던져 저지하는 정치인이 여권에서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나가노현에서 출판업을 하는 60대 남성은 “한국에는 탄압과 저항의 역사를 통해 독재자가 군을 움직여 시대를 되돌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줄기차게 이어졌던 대규모 집회를 현장에서 보았던 그는 “이의를 제기하는 수단은 선거 이외에도 있다는 의식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의 한국 상황을 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일본인들의 인식은 일본 사회에 뿌리내린 열패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운동 단체를 이끄는 이다 나호 대표는 목소리를 높여도 정치가 움직이지 않는 경험에서 “(일본에) 체념이 만연해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다 대표는 아사히에 “활동을 하면서 비방중상을 수없이 들었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피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비난하는 풍조가 있다”며 “그 때문에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진단했다.       

 

저널리스트 다스레이더는 3∼4일 한국의 상황을 “주권자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국회 의결로 권력의 폭주를 막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의원들의 행동을 지지하면서 민주주의가 실천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오늘부터 당신들이 주권자’라고 말을 해서 시작됐다”며 “주권자는 우리고, 의원에게 권한을 맡기고 있을 뿐이라는 의식을 쌓아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수단으로서 민주주의를 키워 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