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이후 미국 행정부는 연일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이례적인 표현으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한·미 외교장관 간에는 소통이 이루어지며 6일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했으나 이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기보다는 ‘빠른 국면 해결’에 대한 희망사항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한국의 민주적 절차에 대한 믿음을 미국측이 언급한 것 역시 미국의 우려가 한·미·일 동맹의 균열이나 한국 사회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현 정권,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리스크에 더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계엄 선포 당사자인 대통령이 현직에 머무르며 긴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방국들조차 멈칫 하며 중요한 외교·안보 협의에 손을 놓는 모습이다. 실무진 급에선 차질 없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외교부는 밝혔지만 정상의 거취 리스크와 국가 신뢰도에서 이미 큰 손상을 입은 상태라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 3일부터 이날까지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한국에서 일어난 계엄 사태 관련 “중대한 우려”, “심각한 오판”, “불법적인 과정” 등의 다소 강한 어휘를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어서 5일(현지시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앞서 일본 방문 이후 방한하려던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해당 일정에 대해 미 국방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평화, 안보, 번영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진전시키기 위한 국방부의 역사적 노력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한 바 있다. 개최가 예상됐던 한·미 국방장관 회담은 무산됐고, 계엄 사태 관련 한국과의 장관급 대화에 대해서도 “발표할 내용이 없다”고 했다. 현 상황에서 한국을 방문하기엔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이 미국 행정부 권력 이양기인 만큼 동맹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한 나라의 최고위 외교관인 대통령으로부터 초유의 사태가 유발됨에 따라 한·미 양국 사회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오스틴 장관은 내년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마지막 한·일 순방을 통해 정권 교체 이후 3국 안보협력을 어떻게 유지·강화할지 논의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앞서 4∼5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을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대북 억지력 강화에 중요한 한·미 간 안보 협의가 차질을 빚는 양상이다.
미국으로서는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계엄 소동에 휘말리거나 계엄 후폭풍으로 인한 북한의 도발 등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파생되는 위험 요소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한·미·일 동맹에 흔들림이 노출돼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는 양국 모두에서 포착되는 분위기다. 다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에서 상황이 빨리 정리되고 국내 사회의 불안이 안정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 시점에서 미국이 기댈 곳은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했다고 믿는 한국에서 그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계엄이 해제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했으며, 한국의 민주적 회복력에 대한 확신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보기에 지금 믿을 수 없는 건 한국이라는 나라보다는 대통령 개인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한밤 중 날벼락 같은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전례 없는 비상 상황에서도 기민하게 이를 해제하는 데 성공한 한국 사회 중 어느 쪽이 문제인지는 자명하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