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野, 국가정상화 책임에 위기감 가져야

계엄과 탄핵 후폭풍 ‘어마어마’
재계와 소상공인 녹다운 상태
국민 요구에 답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단죄 받을 것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4일(현지시간) 프랑스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기습 강등이었다.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이다. 프랑스는 현재 대통령과 의회가 충돌해 정정 불안 상태다.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한국 신용등급 강등을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신용등급은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업·투자자가 제일 먼저 보는 게 나라와 그 나라 기업의 신용등급이다.

 

나기천 산업부장

한국 계엄 사태가 계속됐다면 프랑스보다 더 불안정한 투자처로 낙인찍혀 외투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을 것이다. 계엄 선포서 탄핵까지 걸린 약 2주간 이탈한 주식 자금과 환율 방어를 위해 내다 판 외환 규모도 어마어마했다.



아직 무디스를 포함한 3대 신평사가 한국 신용등급을 기존대로 유지 중이다. 무디스 기준으로 한국은 현재 프랑스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이다. 다행이지만, 앞으로 정국이 어찌 흘러가느냐에 따라 이들 판단이 바뀔 수 있어 걱정이다.

불과 몇 시간짜리 계엄이었다. 그 후폭풍이 너무 세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무섭다.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3사의 분할·합병은 두산그룹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지배구조 개편안이었다. 이게 이들 회사 공시대로라면 “예상치 못한 외부환경 변화”로 없던 일이 됐다.

계엄 사태 뒤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최대 20% 가까이 급하락했다. 주가 하락으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한 가격과 괴리가 커졌다. 결국 두산그룹의 사업 효율화 계획은 허망하게 좌초했다.

지금 재계에선 내년 사업계획·전략 수립이 12·3 계엄 시도처럼 무모한 것이라고 자조한다. 탄핵 불확실성은 해소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월별, 분기별 단기 사업계획만 짜고 있다”, “지난해 기준 몇 %를 감액한 목표를 잡아야 하는지만 정할 것 같다”, “회의를 계속하지만, 누구도 답을 내지 않는다. 조직 개편 방향도 잃었다”는 기업인들의 고충이 이해된다.

수출 기업은 “환율을 얼마에 맞춰 내년 매출 목표를 잡아야 하는지”를, 내수 기업은 “소비 심리가 회복될 수 있을까”를 묻지만, 이 역시 답이 없다.

한 기업인은 “허탈하다”고 했다. 정부 기조에 발맞춰 투자하고 지원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다는 이유에서였다.

소상공인·자영업자, 서민이 느낀 낭패감은 절망적이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뒤 인플레이션 잡기에 올인했다. 물가를 잡으면서 경기 침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실질소득이 줄고 소비 여력이 축소됐다. 대출 규제까지 맞물리면서 서민·자영업자가 그로기 상태로 내몰렸다. 계엄은 이들을 한 방에 녹다운시킨 초강력 펀치였다.

정치가 민생을 발목 잡고 있다. 팬덤 정치·양극단 대결 정치가 일상이 됐고 대화와 협상, 견제와 균형은 사라졌다. 폭력적 대결뿐이다. 정치의 탈을 쓰고 버젓이 행해진 탈(脫)정치의 끝이 이번 계엄이었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세계 유일의 나라다. 하지만 세계 모든 시민이 한국을 그렇게 평가하진 않는다.

미국 의회 도서관에 갔을 때 경비원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길래 ‘코리아’랬더니 ‘노스’인지 ‘사우스’인지를 물었던 일이 있었다. 북한인은 워싱턴에 못 온다고 알려주는데, “전쟁(휴전) 중인데 어떻게 왔느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한국은 외국인에 그저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나라일 뿐이었다. 불과 십수년 전 일이다. 이젠 계엄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더 위험한 나라로 인식될 것이다.

야당도 잘한 게 별로 없다는 게 또 슬픈 현실이다. 탄핵소추 가결 뒤 담화에서 대통령이 “무너졌던 원전 생태계를 복원시켜 원전 수출까지 이뤄냈다”, “선거에 불리할까 봐 지난 정부들이 하지 못했던 4대 개혁을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해 왔다”고 말한 대목에 고개를 끄덕인 국민이 많다.

예상치 못한 정국 주도권을 쥔 지금 야당에 필요한 건 위기감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제1 명령은 국가 정상화다. 못하면 국민은 어떤 방식으로든 단죄한다. 그럼 야당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문이 요즘 매일 정돈해 펼쳐 전하는 기업인·소상공인·시민 목소리를 잘 들으면 답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