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나고 정치권이 탄핵 공방에 휩싸이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주요 경제정책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반도체 특별법과 상속세제 개편안 등 주요 경제 법안은 물론, 정부가 중점 추진하던 양극화 해소와 '밸류업' 정책도 동력을 상실하며 정책 표류가 불가피해 보인다. 여기에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여당이 추진하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은 여야 간 극한 대치로 처리 기약이 불투명해졌다. 이 법안은 반도체 기업의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와 보조금 지원을 골자로 하지만, 여야 합의 가능성이 낮아졌다.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확대와 연구·개발(R&D) 시설 투자 지원책도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논의 재개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전 수출, 동해 심해 가스전 시추사업 등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대규모 프로젝트도 탄핵 정국 속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주주환원 증가액 법인세 공제,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등 '밸류업'을 목표로 한 자산시장 활성화 정책도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책 추진 의지를 강조했지만, 핵심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속세제 개편안,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 한도 상향 등 다른 경제 법안들도 처리 지연이 불가피하다.
다만,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처럼 여야 합의가 이뤄진 일부 민생 법안은 연내 처리 가능성이 점쳐진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내년도 예산안 논의도 난항을 겪고 있다. 야당은 정부안에서 4조1000억 원을 삭감한 단독 감액안을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했지만, 여야 간 협상이 멈추며 준예산 편성 가능성이 제기된다.
준예산은 정부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최소 예산만 집행할 수 있어, 복지나 재량 지출이 대폭 제한될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이를 피하려는 입장이지만, 장기화 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탄핵 정국은 정부 정책의 중장기 로드맵 설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준비 중인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의 의미는 퇴색되고, 양극화 해소 대책 발표 역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책도 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만나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로드맵과 국정 수습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 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퇴진 시까지 사실상 직무가 배제될 것이며, 국무총리가 당과 협의해 국정 운영을 챙길 것"이라고 밝혔다.
탄핵 정국 속에서 정부의 민생·경제 현안 해결을 위한 여야 협치가 절실하지만, 현실적인 해법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