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목표입니다. 마치 관객이 춤을 추고, 관객이 울고, 관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삶과 죽음, 사랑, 기억 등의 주제를 손가락 춤으로 표현한 총체극 ‘콜드 블러드’의 연출가 자코 반 도마엘(67)은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이렇게 소개했다. 13∼14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한국 초연을 앞두고 세계일보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다.
1991년 장편 데뷔작 ‘토토의 천국’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 상’을 거머쥐고 영화 ‘제8요일’(1996), ‘미스터 노바디’(2009)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 영화감독인 도마엘은 아내이자 안무가인 미셸 안느 드 메이와 함께 벨기에 창작집단 ‘키스 앤 크라이 콜렉티브’를 이끄는 공연 연출가이기도 하다. 도마엘 부부는 ‘콜드 블러드’와 같은 방식으로 먼저 제작한 ‘키스 앤드 크라이’를 2014년 한국에 선보인 바 있다. 두 작품 모두 무용과 연극, 영화, 문학 등을 결합한 실험적 성격의 총체극이다.
무대에는 영화 촬영장처럼 미니어처(작은 모형) 세트와 카메라, 조명 장비 등이 갖춰지고, 극장에서나 볼법한 큰 화면이 상단에 설치된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용수 두 명이 모형 세트에서 검지와 중지만을 이용한 세밀한 손가락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기에 미리 녹음된 해설과 음악이 더해지고 공연 촬영 영상이 실시간으로 화면에 투사된다. 관객들은 무대 위 공연과 화면 속 영화를 동시에 보게 되는 셈이다. 도마엘이 “이 작품은 기존의 틀을 벗어난 형태의 공연”이라며 “이런 포맷(양식)에 이름을 붙인다면 ‘일회성 영화’라고 할 수 있다”고 한 이유다. “공연은 아무런 사전 녹화 없이 모든 촬영이 실시간으로 관객들 눈앞에서 이뤄지고, 유일한 기록장치는 현장 관객의 기억일 뿐 나머지는 사라질 운명에 놓입니다.” 그러면서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 게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했다.
손가락 춤 아이디어는 우연히 떠올랐다고 한다. “아내(드 메이)와 주방 식탁에서 아이들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며 이야기하다 손가락만으로 춤을 추고 실시간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얘기까지 흘러가 즉흥극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는 “손은 거울 없이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매우 섬세한 신체기관”이라며 “형태를 바꿔 사람, 동물, 새 등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도 있는 등 우리 몸의 중요한 일부”라고 말했다.
공연 해설은 앞서 ‘키스 앤드 크라이’ 공연 때와 같이 배우 유지태가 맡았다. 도마엘은 “부드럽고 다정한 유지태의 목소리가 차갑게 풍자적인 내용과 반전을 이루기 때문”이라며 “온화한 미소를 띠며 ‘당신은 곧 죽을 거야. 그런데 다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이 해달라고 유지태에게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다룬 주제는 어리석거나 의미 없고, 예상치 못한 죽음입니다. 죽음은 어느 순간 다가오고, 그 이전의 삶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되죠. 관객들은 공연 중에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매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10년 만의 내한공연을 앞둔 도마엘은 “한국은 언제나 ‘참 흥미로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문화적으로 전 세계에 뻗어나가고 있다”며 “한국 관객이라면 ‘콜드 블러드’의 블랙코미디(잔혹하거나 기괴하고 통렬한 풍자를 내용으로 하는 희극)적 요소를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