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민의힘 중앙당사 3층 기자회견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전 11시 정각. 검은 양복에 짙은 밤색 넥타이를 맨 한동훈 대표가 한덕수 국무총리와 들어섰다. 한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질서 있는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미칠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이날 한 총리와 대국민담화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으므로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 판단”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공언했지만, 구체적인 퇴진 시점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당내 논의를 거쳐 그 구체적 방안들을 조속히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당내에선 탄핵과 하야 등에 강경한 반대 목소리가 큰 상태다. 이어 한 대표는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 국민들과 국제사회에서 우려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한 대표는 이날 윤 대통령이 한밤에 벌인 반헌법적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수사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지금 진행되는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수사기관 수사가 엄정하고 성역 없이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정부나 당이 대통령을 포함해 그 누구라도 옹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국민적 불안과 국가적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국민들께서 정부에 느낀 실망감과 불신이 대단히 크다”라며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으로서 준엄한 국민 평가와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조기 퇴진 시점을 못 박지 않는 대신 그는 한 총리와의 ‘섭정 체제’를 시사했다.
한 대표는 “대통령 퇴진 전까지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민생과 국정을 차질 없이 챙길 것”이라며 “당 대표와 국무총리 간 회동을 주 1회 이상 정례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총리와) 상시적 소통을 통해 경제, 외교, 국방 등 시급한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해 한치의 국정 공백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라고도 했다.
한 총리는 이날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정에 한 치의 공백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라며 “한미, 한미일, 그리고 우리의 우방과의 신뢰를 유지하는데 외교부 장관을 중심으로 전 내각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야당을 향해서도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비상시에도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과 그 부수 법안의 통과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우원식 국회의장님의 리더십 아래 여야 협의를 통한 국회 운영 등으로 경청과 타협, 합리와 조정이 뿌리내리길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다만 헌정질서를 훼손한 윤 대통령을 향한 ‘촛불 민심’이 요동치고 있고, 야당에서도 정부·여당을 ‘내란 동조범’으로 규정한 상태라 한 대표에겐 난항이 예상된다. 이날 한 대표와 한 총리 모두 담화 직후 ‘퇴진 시점’, ‘권한대행 방식’ 등을 묻고자 한 취재진과의 별도 질의응답 없이 급히 현장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