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재임 내내 언론과 마찰 갑질 의혹 보도 후 브리핑 취소 기자 출입 제한 등 ‘뒤끝’ 작렬 모두 공감능력의 부재 아닐까
정재호 주중대사의 마지막 특파원 상대 언론브리핑이 지난 2일 진행됐다. 그는 이달 중 귀임 예정이다.
브리핑 후 질의응답에서 가장 처음 나온 질문은 2년5개월 간의 재임 기간 소회를 묻는 것이었다. 거창한 이임 소감이 나오길 바랐다기보다 ‘귀임을 앞두고 인사 정도 하시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런데 정 대사는 질문이 나오자마자 “달리 별다른 소회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귀를 의심했다. 주중대사를 맡은 동안의 소회가 ‘없다’니. 어색해진 분위기를 뚫고 추가 질문이 나왔다. ‘그래도 좋았던 점도 있을 것 같고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 꼽을 만한 게…’까지 듣더니 정 대사가 재차 말했다. “별로 없습니다.”
재임 기간 내내 언론과 마찰을 빚은 그로서는 이런 질문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간 한 달에 한 번씩 해온 브리핑 자체가 불편하고 껄끄러운 자리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다못해 “대사관 직원들의 고생이 많았다” 같은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할 수 있다기보다 그 정도 이야기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2박3일짜리 중학생 수련회에서도 마지막 날 밤에 초를 하나씩 쥐여 주면 저마다 눈시울이 벌게져서 수련회에서 느낀 점과 앞으로 생활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초등학생 일기조차 ‘참 재미있었다’로 끝을 맺는다. 주중대사로서의 소회가 이만도 못한 것이었나 싶다.
정 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귀임에 앞서 주중외교단, 기업인, 교민 등을 한자리에서 뵙고 인사를 하기 위해 대사관에서 이임 리셉션을 가질 예정”이라며 10일 이임 리셉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자 리셉션 때는 정 대사가 대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졌다. 2일에 없던 소회가 10일에는 갑자기 생겨나려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하지만 리셉션이 취소되면서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마저 없어졌다. 주중대사관은 지난 4일 “제반 사정으로 10일 예정된 주중한국대사 이임 리셉션을 취소하게 됐다”고 알려왔다. ‘제반 사정’이라 함은 3일 밤 선포된 비상계엄 사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그 사정을 제공한 이는 정 대사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사관에 꼬투리를 잡힐 것 같아 먼저 밝히면 처음에 언급한 정 대사의 답변은 익명 보도 전제인 브리핑 후 질의응답에서 나왔다. 관례상 질의응답에서의 발언은 ‘대사관 고위 관계자’로 표현하게 된다. 정 대사는 2022년 8월 취임 이후 자신의 개인적인 발언을 실명 보도했다는 이유로 1년 넘게 브리핑에서 현장 질문을 받지 않은 바 있다.
그런 전례를 겪었음에도 굳이 실명을 넣어 쓰는 이유는 비실명 보도로는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외교 현안 브리핑에서 비실명 보도를 하는 이유는 실명 보도 시 국익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 소회가 없다는 그의 발언이 국익과는 관계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국격과는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 대사는 앞서 지난 3월 말 본인의 갑질 의혹이 보도되자 이튿날 4월 초 예정된 정례브리핑을 ‘일신상의 사유’로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그러더니 4월 말에는 특파원들의 대사관 출입까지 제한했다. “최근 보안 관련 문제가 발생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일부 언론이 출근 시간 갑질 의혹에 대한 정 대사의 의견을 직접 듣기 위해 대사관 뜰 안에서 현장 취재를 시도한 것을 ‘보안 문제’로 덮어씌운 것이다. 이런 일들을 되짚어보면 최근 이임 소회에 대한 답변을 포함해 이해할 수 없었던 각종 조치가 공감능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질의응답을 ‘대사관 고위 관계자’로 표현하는 관례를 깼지만 정 대사가 얼마 안 남은 임기 동안이나마 지난번 같은 통제 조치나 그보다 더한 ‘대사관 계엄령’ 같은 것을 선포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인수인계 기간 차기 대사와 상의해 이후에도 그런 조치를 하시라. 다만 차기 대사는 좀 더 상식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