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연예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가수 임영웅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정치 참여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반면 한국 사회가 연예인에게만 유독 높은 잣대를 요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평론가들은 “개인의 자유”라면서도 “시민의 정치 참여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은 자유”라며 “그러나 정치인만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추운 날에 광장에 나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시민들에게 ‘당신들은 정치인도 아니잖아요’ 하고 모욕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교익은 앞서 임영웅이 했다고 알려진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는 발언을 언급한 뒤 “민주공화국에서는 모든 시민이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시민이 정치적 발언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면서도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그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적었다.
이어 “한국의 보통 연예인은 그렇게 살아가고, 이런 자세가 윤리적으로 바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사람에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바르지 않다고 저는 생각한다”며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려면 서로 그 정도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임영웅은 대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지켜보던 지난 7일 오후 6시쯤 자신의 SNS에 “우리 시월이 생일 축하해”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반려견과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이후 한 누리꾼 A씨가 임영웅에게 보낸 다이렉트(DM) 메시지를 공개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A씨는 임영웅에게 DM으로 “이 시국에 뭐 하냐”라고 물었고 이에 임영웅은 “뭐요”라고 답했다.
A씨는 임영웅에게 “위헌으로 계엄령 내린 대통령 탄핵안을 두고 온 국민이 모여 있는데 목소리 내주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정말 무신경하다. 앞서 계엄령 겪은 나이대 분들이 당신 주 소비층 아니냐”고 다시 메시지를 보내자 임영웅은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고 반문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임영웅 소속사는 현재까지 사실 여부 등 관련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서는 “너무 경솔했다”는 비판과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이 맞서며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가수 겸 배우 차은우가 같은 날 올린 화보 사진에도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누리꾼들 댓글이 쏟아지자 “정치적 발언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의견과 “가만히 있지 굳이 왜 올리냐”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하지 마라” 등의 의견이 맞섰다.
탄핵과 관련해 소신 발언을 하는 다른 연예인 등과 비교되며 비판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계엄 사태 이후 대중문화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엄중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잇따라 내고 있다. 지상파 등 방송사는 예능 프로그램을 결방하고 뉴스 특보 등을 대체 편성했다. 봉준호 감독, 배우 문소리 등 영화계 관계자 2500여명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배우 이엘, 신소율 등은 SNS에 여의도 집회에 직접 참석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아이즈원 출신 가수 이채연은 “정치 얘기할 위치가 아니라고? 정치 얘기할 수 있는 위치는 어떤 위치인데?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알아서 하겠다. 연예인이니까 목소리 내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걸그룹 스테이씨 등 K팝 아이돌들은 팬 소통 플랫폼 등을 통해 ‘촛불’ 이모티콘을 올리며 집회에 참여하는 팬들을 응원했다.
대중문화계에 때아닌 ‘사상검증’이 이어지며 일각에서는 연예인에게 과도하게 높은 사회적 지위와 윤리적 잣대를 부여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배우 김규리는 2009년 광우병 파동 당시 ‘청산가리’ 발언 이후 ‘정치색을 띤 배우’라는 프레임에 오랫동안 피해를 받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최근 밴드 자우림의 김윤아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방류를 비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견해를 표현할 수 있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경우 책임도 따르기 때문에 공개적 표현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저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세계일보에 “연예인들이 정치적 의견을 내거나 안 내는 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 입장에 대한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며 “다만 왜 의견을 내지 않느냐고 강요하는 건 잘못됐다. ‘내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을 내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 또한 부적절한 대응이다. 본인의 영향력을 고려한 발언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