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계엄·탄핵 사태로 뒤숭숭한 가운데 지방의 민생 현장 1번지인 한 광역의회가 의장 없이 해를 넘기게 돼 논란이다. 국내 광역시의회 중 유일하게 의장이 공석인 울산시의회 이야기다. 울산시의회는 의원들 간 낯뜨거운 의장 ‘감투 쓰기’ 다툼과 이에 따른 법적 분쟁으로 의장 선출이 반 년째 지연되고 있다.
울산시의회 의장 다툼은 올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힘 20명, 더불어민주당 2명으로 꾸려진 울산시의회는 민선 8기 후반기가 시작된 6월25일 후반기 의장 선거를 실시했다. 당시 국민의힘 소속 이성룡 의원과 안수일 의원이 후보로 나섰다. 두 후보는 거듭 동수 득표를 기록하며 의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개표 과정에서 도장이 두 번 찍힌 기표 용지가 발견됐다. 울산시의회 선거 규정엔 ‘같은 후보자란에 2개 이상 기표된 것은 무효’라는 조항이 있다. 안 의원 측은 이 문제를 법원에 제기했고,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선거 자체가 무효화됐다.
문제는 그 뒤로도 이어졌다. 지난달 초 재선거를 열기로 했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 또 다른 후보가 등장하고 막판에 후보자들이 모두 사퇴하면서 선거를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정치적인 셈법에 의해 의장이 계속해서 선출되지 않으면서 의회는 시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의장 자리를 둘러싼 싸움은 단지 개인의 욕심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의장직은 지자체에서 단체장에 이어 의전 서열 2위로 대우받고 관용차와 운전기사를 제공받는다. 업무추진비도 연간 5200여만원이 지원된다. 의회 공무원 인사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그만큼 정치적인 중요성을 지닌 자리이고, 당연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특권을 쟁취하기 위한 갈등이 시민들의 의회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민선 8기 후반기 시의회 개원 후 한 달 넘도록 본회의가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고, 임시회 일정도 수시로 미뤄졌다. 의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장 자리를 둘러싼 싸움만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민주당 울산시당과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의회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즉각 의장 선출을 촉구하고 있다.
울산시의회는 이제는 더 이상 의장 공백 사태를 방치해선 안 된다. 자리를 위한 싸움에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라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의정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의회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울산시민의 목소리를 우선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